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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

​<특집> 내가 읽은 4.3시 ㅣ 김혜연 추천

곡두

 

 

오름 너머 오름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무자년 계절 속으로 마중 가는 사람들

그 뒤를 무턱대고 따라나선 날은

자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곤 한다

제주조릿대 서걱서걱 헤치며 나아갈 때마다

다급히 어디선가 쫓기는 발소리에

놀란 노루처럼 내가 사라지기도 한다

 

증언의 억새밭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어나무 사람주나무 침묵으로 결집한 나무들

제주 땅 어디서나 상처 없는 나무가 없다는데

죽음도 수습 못한 아비의 무덤을 찾다가

까마귀 울음조차 말라가는 서중천 물길을 따라

벼랑에서 쏘아대는 총성을 들은 것도 같다

 

사람이 살았다는 집 자리와 밭 자리마다

누군가를 겨누었던 녹슨 탄피와 탄두들

끝까지 놓지 않았던 부러진 숟가락 옆에

바위 같은 사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지

깨진 사발, 깨진 항아리를 어루만지면

숯덩이처럼 불 지펴오는 저릿한 기억이 있어

옛사람 마중하는 마중물 사람들

그때 그 산을 마중하러 산을 또 오른다

 

오늘, 나는 무엇을 마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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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제주4.3 75주년 추념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한그루, 202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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