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락
김진철
“엄마, 우리 강아지 한 마리만 키워요? 네?”
“안돼!”
엄마는 차갑게 말을 하고서는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벌써 두달 째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엄마에게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르고 있는 중이지만, 엄마는 도무지 내 소원을 들어줄 것 같지가 않다. 우리 엄마는 애완동물이라면 질색한다. 강아지를 키우면 먹이도 시간마다 챙겨줘야 하고, 목욕도 시켜줘야 하고, 똥도 치워줘야 하는데 나 혼자서는 그것을 모두 할 수 없다고 한다. 엄마에게는 강아지를 키우지 말아야할 이유가 수 백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거기다 우리집은 아파트여서 강아지가 짖으면 이웃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말도 꼭 덧붙인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아랫집에 사는 내 친구 두리가 강아지를 키운다는 사실을 말이다. 두리 말로는 자기가 들어서면 꼬리를 정신없이 흔들면서 달려든다고 한다. 그리고 앞 동에 사는 유미는 작은 고양이를 키운다. 고양이를 꼭 안고 있는 사진을 보여줬었는데 눈 감고 자고 있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그러니 엄마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은 틈만나면 자기 개가 최고라는 둥, 우리 고양이가 제일 귀엽다는 둥 자랑하며 티격태격한다. 애완동물이 없는 나는 그 옆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꼭 강아지가 아니어도 된다. 집에서 나를 기다려 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 거다. 엄마는 늘 바쁘다. 아침이면 일을 나갈 준비를 하기에 바빠서 나를 돌봐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매일 혼자서 엄마가 챙겨놓은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저녁에도 늦게까지 일을 하는 바람에 나 혼자 있을 때가 많다. 그때 같이 놀 애완동물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텐데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준다.
그래서 나는 둥그런 달이 뜨면 소원을 빌었다. 예전에 할머니가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달에 살고 있는 토끼가 커다란 귀로 소원을 듣고 들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 몇 번의 보름달이 지나가도록 변하는 것은 없었다.
오늘도 학교에서 친구들의 애완동물 자랑을 실컷 듣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을 열려는데 문 앞에 작은 상자가 놓여져 있었다. 상자에는 ‘인호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나한테 보냈지?’
보내는 사람은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가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둥지처럼 지푸라기가 깔려 있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주먹만한 크기에 둥그스런 모양, 그리고 온 몸에 구멍같은 점이 나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페트락 훈련교본’이 함께 들어있었다.
‘페트락? 이게 뭐지?’
나는 훈련교본을 읽기 시작했다.
“페트락은 상자에서 나오면 나오면 처음에는 긴장할지 모른다. 그러면 신문지 위에 가만히 올려놓아만 줘라. 페트락은 신문지가 왜 필요한지 스스로 알 테니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
(혈통에 대해) 당신의 페트락은 이집트 피라미드와 유럽 고대도시의 자갈길, 중국의 만리장성 속 선조들, 아니 시간이 시작된 그 순간 너머까지 혈통이 이어져 있다.
(기본훈련에 대해) 당신의 페트락은 누가 주인인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훈련은 필요하다. 페트락은 채찍이나 초크체인이 필요 없는 애완동물이다. ‘이리 와’같은 명령은 부드럽지만 단호해야 한다. 처음에 아무 반응이 없으면 정상이다. 자기 페트락이 너무 멍청하다고 불평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모든 훈련에는 극도의 인내심이 요구된다. 하지만 ‘멈춰’나 ‘앉아’같은 명령에는 기가 막히게 잘 따를 것이다.
(심화훈련에 대해) ‘굴러’같은 기술을 익히게 하려면 경사진 곳에서 훈련시키는 게 좋다.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지칠 때까지 구를 것이다. ‘죽은 척하기’는 페트락의 주특기다.
그래! 이것은 애완동물이야. 나는 집안을 뒤져서 어제 온 신문을 찾아냈다. 그리고 내 방 책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페트락을 가만히 올려두었다. 그리고 가만히 페트락을 바라보았다.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거나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페트락을 이리저리 구경하는 재미에 전보다 심심하지 않았다. 내가 만져도 얌전히 있는 것을 보니 정말 나를 주인으로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페트락과 놀고 있는 사이에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루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엄마가 올 시간이었다.
‘큰일이다. 엄마는 애완동물은 절대 안된다고 했는데, 분명 이것도 쫓아내려 할거야’
나는 재빨리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서랍 속에 페트락을 집어 넣었다. 답답하겠지만 함께 있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인호야, 어디에 있니? 밥은 먹었어?”
그러고보니 페트락과 노느라고 저녁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
나는 책을 펴고 공부를 하는 척을 했다. 엄마는 나를 슬쩍 보더니 뭔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두 손에서 땀이 났다. 다행히 엄마에게 들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제 나도 애완동물을 키우게 되었다. 물론 아무도 몰래 말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페트락에게 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 해주었다. 가끔은 선생님과 엄마의 흉을 보기도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다. 친구들의 애완동물도 부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리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마지막에는 내 약점을 건드렸다.
“너는 집에 애완동물도 없잖아?”
그 말에 나는 화가 났다. 그래서 비밀인 것도 잊고 크게 외쳤다.
“아니야! 우리집에도 애완동물 있어! 내 페트락은 니네 집 개처럼 밥을 안 줘도 되고, 똥 치울 일도 없고, 말썽도 안 피우고, 씻기기도 쉬워, 그리고 산책시켜 달라고 조르지도 않아!”
아이들은 나의 말에 놀란 얼굴이었다. 그리고 페트락이 어떻게 생겼나고, 한 번만 보여주라고 내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날 나는 친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친구들은 페트락을 구경하기 위해 학원도 빼 먹고 우리집으로 향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내 방으로 들어갔다.
“페트락이 놀랠 수도 있으니 절대 큰 소리를 지르면 안돼.”
친구들은 모두 조용히 내 책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제만 해도 얌전히 있었던 페트락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서랍을 열어봤지만 그곳에도 페트락은 없었다.
“뭐야! 거짓말이었잖아.”
“거짓말쟁이!”
아이들은 실망한 표정을 짓고 가버렸다.
‘그럴리가 없는데......’
나는 온 집안을 뒤지며 페트락을 찾았다. ‘옷장 안에 두었나?’, 아니면 ‘침대 밑에?’ 움직이기 싫어하는 패트락이 혼자 걸어 나갔을리는 없다. ‘그래 이것은 분명 엄마 짓이야. 내가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을 알아버린 거야.’
역시 엄마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애완동물을 싫어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 엄마가 쓰레기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들고 나가는 것을 본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파트 입구에 있는 클린하우스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페트락을 구하기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때였다. 클린하우스 옆에 있는 잔디밭에 주먹만한 크기에 둥그스런 모양, 그리고 온 몸에 구멍같은 점이 나있는 것을 발견했다. 페트락이었다. 나는 반가움에 얼른 집어 들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밖에 오래 있어서인지 패트락의 몸이 뜨거웠다. 나는 얼른 집으로 데려와 목욕을 시켜주었다. 패트락도 다시 돌아와서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다시는 패트락과 헤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 비밀을 말하지 않을 거다. 나는 책상 서랍 더 깊숙한 곳에 패트락을 넣어두었다. 엄마가 절대 찾지 못하게 말이다.
*‘페트락 훈련교범’은 한국일보의 애완돌멩이 관련 기사(2015.4.18.) 내용을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