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시1
<특집> 내가 읽은 4.3시 ㅣ 홍임정 추천
앵두나무가 죽었지
이모, 앵두나무가 죽었어
엄마 나무 아빠 나무 내 나무는 모두 잘 있는데
이모 나무만 죽은 거야
봄부터 죽어 가는 게 보이는데도
살릴 수 없더라
세상엔 기도로도 안 되는 일이 있더라
오늘 아빠가 밑동을 톱으로 자르는 걸 보면서
울지 않았어
앵두나무가 죽었지
이모가 죽은 건 아니니까
앵두나무가 죽었지
기도가 죽은 건 아니니까
나는 이모 앵두나무를 다시 만들 거야
세상에 앵두나무는 많고
나는 앵두를 좋아하고
앵두는 떨어진 자리에서 쑥쑥 자라는 나무니까
이모가 돌아오면
이모 두 손 가득 앵두를 담아 줄 거야
걱정 마, 이모
내가 좋은 곳마다 뱉어 줄게
우리 동네 앵두꽃은 내가 다 피울 거야
이안
제주4.3 76주년 추념시집 <수평선 접힌 자국마다 그늘진 절벽>(한그루, 2024) 中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