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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

말귀

 

 

슬쩍 더듬어 보는 것이었다

 

말에도 귀가 있다고 해서

 

그것도 알아듣지 못하냐며

나보다 늙은이를 향해 지청구를 쏟았을 때

 

발끝으로 두드려도 보고

밑창으로 쓸어도 보며

그는 문장의 바닥을 가늠했다

 

참을 수 없었는지

지그시 밟아도 보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늙은 두 발이

말들 사이로 깊이 빠져

발목에서부터 허리, 가슴까지 차올랐다

허우적댈수록

말들이 더욱 쏟아졌다

귓구멍이 다 막히도록

 

귀에도 말이 있다고 해서

 

기가 막힌 늙은 귀들이

뿌리째 엉긴 갈대처럼 찰랑거리다

파동처럼 퍼져 나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습지를 이루었다

 

습지는

추락에도 충격을 흡수한다던데

어제 알았던 것도

오늘 처음 들은 것처럼

처음 들은 이야기도

평생 잘 알아 온 일처럼

구절들이 산산이 뿌려지는데

 

내가 서 있던 곳은

그와는 아주 먼 거리라서

아무리 굴러도 귓바퀴가 닿지 않아서

몸을 넓게 펼쳐 부력을 높이며

습지에서 천천히 발을 빼는 나이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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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문희 muninuri@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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