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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진-2 침대에 누우면 전면창 밖으로 메콩강이 보이는 방갈로 숙소 2층의 가운뎃방.jpg

태국여행기 13~15

태국여행기 13~15

 

  2017년 10월 11일-태국여행기 13

  도시의 유령

 

  거리를 끊임없이 헤매는 것은 나의 오래된 고질병이다. 나의 소설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이야기인데 젊은 시절 나는 특히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끊임없이 헤매고 다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주요한 이유는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믿었었다. 또 사진을 그만 두는 시기와 거의 맞물려 지금 나의 남편이 된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되어 혼자 거리를 헤맬 일이 없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 중국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걷고 걷고 또 걷는 과잉행동이 다시 살아나 그런 내 모습에 내가 놀랐었다. 볼 거리가 있는 곳도 아닌, 먼지만 덮쳐오는 거리를 뭔가에 홀린 표정으로 앞장서 걷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남편이 뒤쫓아오면서 “도대체 무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 거냐”고 나를 최면에서 깨우듯이 말했었다.

 

  잠깐 언급했지만 이곳 치앙마이에서도 그런 ‘내 안의 도시의 유령’이 되살아나 나를 이끌고 활개를 치고 다녔다. 밤을 새우고도 아침이 되면 발을 이끌고 숙소를 나서서 어제도 헤매었던 광장과 골목과 시장과 강변을 시지프스처럼 다시 돌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이국의 풍경에 이끌린 이유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곳을 최대한 새겨둔다는 마음이라 생각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보단 나의 오래된 고질병에 가깝다.

  하지만 이젠 사진작업을 위한 것도 아니고 피해야 할 오빠가 있는 것도 아닌데.

  거의 관광도시에 가깝고 상점들이 즐비하며 유행을 따라 온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치앙마이의 매연이 가득한 거리를 매일같이 걸으며 나는 이 도시에 매듭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도시의 유령에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히기 전에 이곳을 떠나자. 가장 먼 변방으로 가자. 시골마을로 가자.

  그래서 나는 어제 오후, 거리라고는 메콩강을 따라 난 일차선 차도가 전부인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최북단의 작은 시골마을인 치앙콩까지 오게 되었다.​​​​​​​​​​

사진-1 메콩강을 두고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쪽의 작은 마을 치앙콩.jpg

메콩강을 두고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쪽의 작은 마을 치앙콩

 

  2017년 10월 12일-태국여행기 14

  도시의 유령 2

 

  그리고 치앙콩에 와서야 그 발 달린 유령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6시간 남짓 고속버스를 타고 치앙콩에 도착하여, 역시 아고다를 통해 검색해둔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석양이 기울어가는 저녁이었다. 한숨 돌릴 겸 발코니에 서서 해질녘의 메콩강과 그 너머로 보이는 라오스의 인가들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외로움이 엄습해왔다. 여행을 떠나온 이후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리고는 반사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곳은 숙소 앞을 나가자마자 마음을 빼앗아줄 볼거리로 가득한 치앙마이가 아니었다. 숙소 밖을 나가봤자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음식 냄새와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들과 번져나오는 불빛들에 마음이 더욱 서늘해질 게 분명했다. 그런 건 보고 다닐 게 못 된다.

  도시의 유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그와 더불어 나는 유령의 정체까지 알게 된 것이다.

  값비싼 맥킨토시 컴퓨터 장비를 갖추고 과제를 하는 과 친구들 속에서 나는 환경의 간극으로 인한 외로움 때문에 카메라를 품에 안 듯 메고서 거리를 헤매다녔고, 닿을 수 없이 점점 벌어지는 오빠와의 간극으로 인해 외로웠던 것이다. 눈앞에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는 한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외로움도 풀어진 신발끈처럼 발밑에 밟히고 있었다. 나는 하루종일 떨쳤던 외로움이 다시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 이곳 치앙콩의 따뜻한 처마밑 같은 곳은 되도록이면 피해다녔다.

  그리하여 치앙콩에 온 첫날밤, 갈 곳 없어진 도시의 유령이 나를 버리고 떠나간 뒤 나는 그동안 자신만만하게 뒤집어놓았던 스마트폰을 들고서 남편에게 자꾸만 문자를 보냈다.

사진-2 침대에 누우면 전면창 밖으로 메콩강이 보이는 방갈로 숙소 2층의 가운뎃방.jpg
침대에 누우면 전면창 밖으로 메콩강이 보이는 방갈로 숙소 2층의 가운뎃방

 

  2017년 10월 13일-태국여행기 15

  고독의 맛 1

 

  “아무것도 없고 고독한 시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라는 나의 문자에 남편은 “이제 대면할 때가 왔나보우. 고독 속에 울다 지쳐 잠이 든 네 유년과 만나요. 꼬마마녀가 도와줄꺼야” 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남편의 말대로 고독 속에 울다 지쳐 잠이 들 것만 같은 예감에 나는 “얼른 잠이 들어서 빨리 내일이 되어야 겠어요” 라는 문자로 대화를 끝낸 뒤 불을 끄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치앙콩에서 내가 묵은 숙소는 어두운 나무판을 기워 만든 방갈로였다. 100밧에서 200밧 선의 도미토리에서부터 250밧의 공동욕실을 쓰는 싱글룸과 350밧의 발코니 싱글룸, 450밧의 발코니 더블룸, 600밧의 특별룸이 모두 메콩강을 향해 박스처럼 붙어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250밧의 방에 냉큼 들어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치앙마이와의 물가의 차이만큼 내 지갑도 조금 더 벌어져 있었다. 게다가 버스를 타고 오면서 치앙콩에서는 꼼짝 않고 글만 쓰리라 다짐한 후였기에 가격보다는 방의 환경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렇더라도 특별룸은 볼 생각도 안했지만. 나머지 방들 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방은 450밧짜리 방이었다. 아래 위로 총 3층에 한 층당 세개의 방이 서로 벽을 있대고 있는 방들 중 2층의 가운뎃방, 그러니까 정중앙의 방이었다. 게다가 그 방과 1층의 가운뎃방만 발코니가 강을 향해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방에 있던 테이블에 무릎을 구부리고 글을 쓰는 시늉을 해보고는 큰 망설임 없이 그곳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는 마룻바닥에 그그극 하는 소리를 내며 책상을 발코니로 나가는 전면창 앞으로 옮기고 카운터에서 의자 하나를 가져다 달라고 한 후(의자가 없었다), 남편과 문자를 몇번 주고받다가 아까 말한 것처럼 깊은 밤에 찾아올 고독이 두려워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침대는 기대어 앉으면 앞쪽으로 메콩강이 보이는 위치를 향해 놓여 있었다.

2026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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