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여인숙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이사한 곳은 작은 여인숙이었다 새로 얻은 새엄마가 벙어리였으면 좋겠다 그럴수록 잠만 잘 수 있는 작은 방이 참 좋다 이름도 참 고운 들꽃 여인숙
낮 동안 빈방은 오므라져 있다가 밤이 되면 활짝 기운이 돌았다 나는 빈방을 돌며 잠을 청했다 말년휴가를 나온 밤은 빈방도 없었다
아버지는 세간을 버리고 제기와 병풍만 남았다 화장실이 한곳, 샤워실이 한 곳, 아내의 제삿날 딱 한 번 쉴 수 있는 이름도참 고운 들꽃 여인숙
작은 방들의 문은 서로 겹쳐 있으면서도 부딪치지 않고 활짝 피었다 샤워실에 앉아 제기를 닦는 날이면 죽은 엄마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내를 생각했다
빈방을 정리하려고 들어간 방 안에는 컴컴하고 굵은 등을 가진 형이 병풍처럼 고이 접혀 코를 골고 있었다 나는 그런 풍경을 죽은 여자라도 이불 속에 넣어 주고 싶은 풍경이라고 중얼거렸다
제삿날, 불 꺼진 여인숙 문을 두드리는 손님에게 아버지는 바퀴벌레새끼라 욕했다 한 명의 아들은 집사로 섰고 또 다른 아들과 또 다른 아들은 여인숙 복도에 서 있다 한 명씩 들어가절을 하고 나오면 아버지는 가장 먼저 퇴물을 들고 빈방으로 들어갔다
각자 빈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 날 우리는 전생의 등을 생각했다 죽은 엄마는 여인숙 이불 속으로 들어가 이불마다 귀만 한 꽃무늬가 소리를 모으며 응축했다
딱 하루 여인숙 간판불이 켜지지 않는 날이면 바퀴벌레 등같은 전생들이 빠르게 다가와 사라졌다 전생의 소리를 들으려 한껏 귀를 오므리면 나는 뒤집혔다 아무리 재빠르게 발을 놀려도 뒤집힌 나는, 다시 뒤집힐 줄 모르는 세계의 작은 방 속에 있었다
빈방일 때만 잠이 들 수 있는 작은 집이 있었다 새로 얻은 새엄마가 키 작은 벙어리라서 참 좋다 빈방이 있어야 머물 수 있는 마지막 머물 곳, 이름도 참 고운 들꽃 여인숙
-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한그루, 2017) 수록
김신숙 dodohanda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