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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는 시, 제주4·3

 

 

 

  손무현의 노래 「제목 없는 시」를 듣다 보면 이런 대목에서 제주4·3을 떠올리게 된다.

  “제목 없는 시를 쓴 건가 / 그냥 우린 그렇게 / 강물에 뿌린 꽃씨였나 / 난 눈물 흘리네 / 왜 모든 얘기를 나에게 했던 거야 / 바람 불면 바람에 비가 오면 빗물에 흔들려 난 / 어쩌면 좋아”

  정명되지 못한 4·3.

  78주년을 맞은 지금도,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4·3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끝내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4·3은 아직도, 어쩌면, 제목 없는 시처럼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주에 살며 우리는 4·3의 비극을 곳곳에서 마주해 왔다. 바람도 비도 모두 그들의 이야기로 들린다. 돌멩이 하나, 풀꽃 하나에도 4·3의 기억이 스며 있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사람들은 4·3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제주에서는 현재의 갈등조차 오래된 상처의 연장선 위에서 읽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4‧3 진실규명은 항쟁담론보다 희생담론으로 말해왔다. 그래서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수형인들의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고, 4·3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제 항쟁담론을 말해야 할 때가 되었다. 정명은 시대의 흐름이다. 광주는 광주5·18민주화운동이라는 또렷한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제주는 아직도 ‘제목 없는 시’처럼 흐르고 있다. 최근 영화 「내 이름은」 역시 4·3의 이름을 바로 세우지 못한 현실을 비유적으로 환기한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결국 기억이 온전히 자리를 얻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4·3평화공원의 백비다. 백비는 누운 채 아무 말도 새기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어떤 이들은 4·3을 왜곡된 언어로 부르려 한다. 그러나 그 시대 제주 사람들은 통일을 염원했고, 탄압 앞에서 저항의 마음으로 일어섰다. 역사는 더는 침묵이나 왜곡의 언어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제주작가회의는 해마다 4·3 시모음집을 펴낸다. 올해 시집 제목은 『말하지 못한 이름들 꽃술마다 맺혀…』이다. 이 제목은 오래도록 말하지 못했던 이름들, 불리지 못했던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 겨우 4·3을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너무 이른 화해와 상생의 언어가 오히려 역사를 덮고 문질러 지워 버리는 말처럼 들린 적이 있었다.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보다 먼저 화해를 말할 수는 없다.

  4·3은 민중항쟁이다. 1947년 3·10 총파업을 보면, 당시 제주도민이 얼마나 크게 뜻을 모았는지 알 수 있다. 3·1절 발포가 도화선이 되어 사람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4·3평화공원의 백비는 여전히 누운 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누워있으면 등창 난다. 언젠가 똑바로 일어서, 그 위에 ‘항쟁’이라는 두 글자가 또렷이 새겨질 날은 언제일까.

2026 봄

한라산

문학웹진 <산15-1>은 제주 한라산의 주소에서 이름을 딴 제주 기반의 계간 문학 웹진입니다. 섬과 산이 가지는 상징을 문학의 바다에서 풀어보고자 2017년 제주문학동인 ‘시린발’에서 출발하여, 시옷서점과 제주도 내 개발자 모임의 도움으로 산15-1에 도달하였고, 이후 제주비행접시와의 협업으로 문화예술적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발행하며, 내부 필진과 외부 필진의 작품을 골고루 수록하고, 때로는 의미 있는 작품을 재조명하기도 합니다. ‘산15-1’은 소외된 시간과 공간을 묵묵히 견디며 글을 쓰는 작가들의 문학적 성취를 응원합니다.

만드는 사람들

등짐꾼 : 김신숙(시인)

​산지기 : 오광석(시인), 이재(사진작가), 현택훈(시인), 홍임정(소설가)

​디자인 및 편집 : 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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