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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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는 201호 노인이 변기 물 내리는 소리에 깼다. 백색소음으로 깔아두었던 유튜브는 휴대폰 방전으로 꺼져 있었다. 원희는 잠자리 들기 전 휴대폰을 충전하지 않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호주에 있는 원철과 통화 후에는 평소의 자신과 달리 이음새가 불안한 사다리처럼 흔들렸다.
무음 탁상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켰다. 형광인 시곗바늘은 어둠 속에 둥둥 떠 있는 손가락 같았다. 12를 가리키는 긴 바늘과 4를 가리키는 짧은 바늘을 원희는 노려봤다. 흡사 괴물의 손가락이라도 되는 듯이. 방은 파르스름한 박명 속에 잠겼다. 새벽어둠은 항상 원희에게 쓰레기와 썩은 낙엽으로 가득 찬 시멘트 수로를 떠올리게 했다. 수로에서 진흙을 뒤집어쓰고 빠져나온 그것은 온몸에 쓰레기 부스러기가 가득했다. 그것은 서서히 아버지 모습을 갖추더니 팔을 들어 원희를 가리켰다. 원희는 악 소리를 내지 않도록 자신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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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 아버지는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길게 길렀다. 누렇게 때가 낀 그 손톱을 볼 때마다 원희는 가위로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원희 아버지가 손톱을 기르는 목적은 다양했다. 귀를 후벼 파기도 했고 기절할 만큼만 내리쳐 잡은 파리의 머리를 자르는 데도 사용했다. 머리와 몸체가 해체된 채 전시된 파리를 볼 때면 원희는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원희 아버지는 술에 만취하면 한쪽 눈이 거의 감겨 얼굴의 대칭이 무너진 사람처럼 보였다. 원희는 아버지 얼굴이 얼마나 찌그러져 있는가로 아버지 음주량을 계산했다. 아버지는 1학년도 되지 않은 원희와 원철에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면 뺨을 때렸다. 원희는 구구단을 다 외운 후에도 아버지의 상습적인 주취 행사를 빨리 끝내고 아버지가 남매의 공포와 긴장을 오래 맛보는 기쁨을 없애기 위해서 구구단을 못 외우는 척했다. 원희가 구구단의 답을 못 맞히고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면 원희 아버지는 흡족하게 웃으며 원희의 뺨을 갈겼다. 원철이마저 뺨을 맞고 나면 엄마를 닮아서 다 멍청하다며 엎어진 밥상을 치우고 있는 원희 엄마의 옆구리를 발로 차는 것을 끝으로 원희 아버지는 대자로 뻗어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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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노인이 아버지 기억을 불러낸 것에 원희는 더 화가 났다. 노인이 거실을 걸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일부러 쿵쿵 발뒤꿈치를 내리찍지 않는다면 저런 소리가 날 수 없다고 원희는 생각했다. 일주일 전, 콩이로 인해 넘어져 다쳤다며 노인은 보상을 요구했지만, 원희는 응하지 않았다. 노인은 뻔뻔하게도 자신이 콩이를 지팡이로 후려친 건 모른 척할 뿐 아니라 다쳤다는 게 뻔한 거짓말이라는 걸 자신도 안다는 듯이 아픈 시늉도 하지 않았다.
원희는 다시 잠이 들기는 아예 글렀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시간에 일어나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원희는 수면등 스위치를 올리고 충전기를 휴대폰에 연결하여 유튜브의 백색소음을 켰다. 빗소리가 쏟아졌다. 콩이가 머리를 들었다. 콩이는 급수대의 물을 핥아 먹고 자기 집에 들어가 누웠다. 노인에게 얻어맞은 후에 콩이는 노인의 조그만 소리에도 몸을 떨었고 전에 없이 자기 몸을 말고 머리를 숨기며 자는 버릇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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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는 콩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자기의 자궁 안에 머물다 떠난 아기를 생각했다. 초음파로 본 자궁은 어두웠다. 그 안에 조그만 콩처럼 태아가 있었다. 새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콩처럼 생명의 싹을 품은 경이로운 한 점. 초음파 사진을 어떻게 했나. 남편에게 보여주고 나서 핸드백 안에 넣고 다니던 그 사진은 태아가 유산되어 해체돼 버린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미국 어디에서는 핸드백을 강도가 날치기하자 칼을 맞으면서도 핸드백을 뺏기지 않으려 한 여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 여자는 핸드백이 명품이라 지키려 했던 게 아니었다. 여자의 핸드백 안에는 죽은 딸의 마지막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 일화를 들었을 때 원희는 그 여자의 게으름을 탓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면 잃어버렸을 경우를 대비해 필름을 구하고 여러 장 인화해 두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희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병원에서 받아들었을 때 그것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저장해두지 않았다. 게으름이 아니었다. 하나여서, 하나로써 그 가치가 소중했다.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원희 유일의 것이어야 했다. 남편 우석이 사진 찍으려 하는 것을 만류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원희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 시댁 식구들에게, 남편의 친구들에게 공유되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의 내밀한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것처럼 거부감이 일었다. 원희는 그 한 장의 초음파 사진을 자신만 가짐으로써 사진의 가치를 지켜냈다고 자부했다. 만약 강도가 사진이 들어있던 핸드백을 훔치려 했다면 목숨을 걸고 그 사진을 지켰을까. 그러기 전에 초음파 사진이 스스로 사라지는 것을 택한 걸까. 원희는 유산 후에 그 사진을 애써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우석과의 이혼은 유산 후 갑작스럽게 원희에게 밀어닥쳤다. 원희는 우석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우석은 원희의 유산 후 주위에서 조언한 게 뻔한 위로를 건넸다.
“당신 책임이 아니야.”
그 말은 우석이 자기 자신에게 세뇌하는 말인 듯도 했다.
시댁의 기대 속에 5년 만에 들어선 아기는 유산되고 말았다. 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원희가 휴직을 준비하던 중에 그 사건이 터졌다.
원희가 담임인 반에 수동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수동은 숙제를 해오지 않았고 준비물도 챙기지 못했다. 옷을 제대로 갈아입지 않아 수동의 옆에 가면 젖은 채 방치된 걸레 냄새가 나곤 했다. 당연하게 반 아이들은 수동을 자기 그룹에 끼워주지 않았고 수동은 자신이 왕따인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수동은 혼자 외로운 섬처럼 반을 떠다녔다. 수동은 아빠와 단둘이 사는 한부모 가정이었고 같은 한부모 가정이라도 반장인 민정이와 비교됐다. 민정이 엄마는 유명한 성형외과 병원장이면서 학교운영위원이기도 했다.
원희는 가끔 그 일을 혼자 되새기곤 했다.
민정이를 믿고 수동과 짝을 지어준 게 문제였을까. 그 날 수동이네 집을 수소문해 직접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했던 것일까.
수동과 민정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민정은 수동이 지우개를 줍는 척하면서 자신의 치마 속을 보려 했다고 했지만, 수동은 민정에게 주먹으로 맞아서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굴리며 아니라고 중얼거렸다. 원희는 수동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혹시 각막이 손상되지 않았을까 검사를 했고 이상이 없다고 하자 수동을 일찍 귀가시켰다. 원희는 수동 아빠보다는 민정이 엄마가 어떻게 나올까 더 걱정이었다. 성희롱으로 걸고넘어지면 일 처리가 복잡할 게 뻔했다. 그러나 민정이 엄마는 아이들끼리 그런 오해가 있을 수 있다며 수동이 아빠에게 치료비 전액은 물론 위로금을 내겠다고 했다. 원희는 한시름 놓았고 수동 아빠에게는 수동이 짝꿍 여자아이와 오해가 있었다고 설명할 예정이었다. 수동 아빠에게 전화했지만, 계속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날 밤늦을 때까지도 통화 할 수 없었고 원희는 출근해서 계속 통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다음 날, 수동의 빈 자리를 보며 예감이 좋지 않았던 원희는 교실 문이 발칵 열리며 어떤 남자가 들어왔을 때 그가 수동의 아빠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새벽까지 술을 마셨는지 술 냄새를 풍기는 수동의 아빠 눈자위는 빨갰고 그는 몸을 잘 가누지도 못했다.
“우리 아이 눈탱이 밤탱이 만들어놓고 네년이 선생이라고? 왜 아이 선생도 나를 무시하냐고!”
옆 반의 남자 선생이 들어와 수동 아빠를 제압할 때까지 원희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이 굳어 있었다. 아내와 자식새끼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떼를 쓰던 아버지와 수동 아빠가 한 사람으로 겹쳐졌다.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어서 원희는 자신이 구구단을 못 외우는 척하던 어린아이로 돌아간 거 같았다. 아랫배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칼로 에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원희는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원희는 예정대로 휴직처리 되었지만, 휴직 기간이 끝나도 교단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남편 우석의 모범답안 같은 위로의 말도 원희를 되돌려놓지 못했다. 원희가 우석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그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석은 맥주 한 잔에도 온몸에 열꽃이 피면서 횡설수설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석은 술자리에 가서도 술은 마시지 않았고 적당히 분위기만 맞추는 형편이었다. 남자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은 직장생활에서 오점일 수 있지만, 우석은 그 나름의 사교술로 직장에서 원만히 잘 지내고 있었다.
우석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어쩔 수 없이 술 좀 했다는 우석의 입에서는 분해되지 못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 우석은 양복 상의를 벗고 허리띠만 푼 채 원희 옆에 누웠다. 우석은 원희의 손을 잡아 자신의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우석의 그것은 불룩불룩 힘을 키우는 중이었다. 원희의 유산 후 잠자리를 조심하던 우석은 한 달을 넘기지 않고 원희를 원하고 있었다. 보통은 우석이 먼저 원희의 몸을 애무했는데 우석은 원희가 자신을 애무해주기를 노골적으로 바라고 있었다.
“오늘 할 기분이 아니야.”
원희는 손을 빼 돌아누웠다.
“왜 이래. 오랜만에 꼴릴 때 해야지.”
우석이 원희의 몸을 돌렸다. 원희는 ‘꼴릴 때’라는 우석의 말을 들었을 때 몸이 차갑게 굳었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저속한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 들으면 뇌에 각인되어 살과 함께 파내야 했던 쌍시옷의 말들은 조그만 미끼에도 수면으로 떠 올랐다. 자신이 얼마나 저속한 말을 싫어하는지 아는 우석이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게 된 건 분명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의 힘이었다. 원희는 자신을 원하는 우석의 손이 뱀의 축축한 피부라도 가진 것처럼 발딱 일어서서 침실을 나와버렸다.
원희와 우석의 이혼은 주위에 안타까움을 줬는데 주위 사람들은 유산이 이혼에 영향을 줬을 거라고들 추측했다. 원희는 ‘꼴릴 때’라는 저속한 말 때문에 이혼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동생 원철이 실직하자 원희는 자신의 불운이 남은 가족들에게도 옮겨가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원철은 처형이 큰 식당을 운영하는 호주로의 이민을 결심했다. 분점을 계획하고 있던 처형네가 원철의 가족을 받아들여 주었다. 원희는 이혼 후 조그만 오피스텔에 짐을 풀고 있었다. 급하게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의 임시 거처였다.
“누나, 여기로 들어와 살면 안 돼? 집주인이 세입자가 들어와야 전세금을 빼준다잖아. 오피스텔보다는 여기가 나을 거야.”
원희는 그렇게 남동생 가족이 살던 빌라 1층으로 이사 왔다. 이사 오고 난 후에야 원희는 원철의 빌라에 처음 와본다는 걸 깨달았다. 원철이 시내에서 사글세를 살다 전세금을 마련하고 변두리 빌라로 이사 간다 했을 때 원희는 이사비용을 보태기만 하고 방문하지 않았다. 유산 후 마음 둘 곳이 없어 숨이 막히던 시기였다.
변두리의 낡은 빌라는 세월의 덮개처럼 외벽에 검은 물때가 껴 있었다. 원희는 원철이 이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외국으로 쫓겨나는 것만 같았다. 마치 입주 선물이라는 듯이 원철은 하얀 털 뭉치, 콩이를 원희에게 안겼다.
“혼자 적적하지 않고 좋잖아. 우리 콩이가 가끔 현관문이 열리면 탈출하는 버릇 있으니까 그거 조심하고, 그리고……아, 아니다. 하여튼 콩이 잘 부탁해.”
원희의 조카들은 콩이도 같이 호주로 가는 줄 알았다가 울고 불며 난리를 쳤지만 개는 외국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원철의 거짓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누그러졌다. 처형이 개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개는 안된다고 했다는 건 원철 부부만의 비밀이었다. 콩이는 본능적으로 주인이 자기를 버리는 걸 아는지 의기소침한 모습이었고 원희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원희도 콩이를 가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 찾아가지 않은 수화물을 억지로 맡아둔 것만 같아서였다.
빌라에서의 첫날밤이었다. 원희는 꿈을 꾸었다. 연속해서 이어진 문을 열 때마다 점점 더 어려지는 자신이 울고 있었다. 꿈결에 울면서 잠이 깼다. 자기의 마음이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았고 그 사이로 생살이 보였다. 원희는 어떤 부드러운 것이 자신을 닦아주는 기운에 눈을 떴다. 콩이가 원희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혀로 닦아내고 있었다. 원희는 콩이를 가슴에 안았다. 가만히 안고 있자 조그만 몸에서 팔딱팔딱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어느새 원희 자신의 심장 박동도 콩이의 심장 박동을 느끼는지 서로 조응해 박자를 맞추는 거 같았다.
태아 초음파화면에서 심장이 여기에 있다던 여의사의 말을 듣고 원희는 그 한 점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 점은 원희의 눈길을 받자 조그맣게 폴딱폴딱 뛰는 것 같았다. 그때 원희는 평소에 느껴보지 않았던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 콩이를 안고 있을 때 원희는 애써 잊고 있었던 그때의 심장 박동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함이었다.
그러나 새벽부터 이 층에서 거실을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좌변기 내리는 소리와 캬악 하고 가래를 뱉는 소리가 들렸다. 이 층은 그다음엔 TV를 크게 틀어놓았다. 원희는 처음에는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꿈의 장막에서 소리는 어렴풋이 들리다가 꿈길이 엷어질 때는 이 층에서 내는 소음이 원희의 머릿속을 짓밟는 거 같았다.
원희는 어느새 올빼미족이 돼 있었다. 교직 생활을 할 때는 아침형 인간이었지만 그렇게 단련된 리듬은 퇴직 후에 불면증을 겪으면서 깨졌다. 원희는 늦게 잠들었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이 층은 원희와는 반대로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한 번 201호의 층간소음에 귀가 트이게 되자 원희의 귀는 이 층에서 들리는 미세한 소리에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며칠을 참았지만, 새벽마다 층간소음이 계속되자 원희는 201호를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 후에 노인이 문을 열었다. 노인의 눈꺼풀이 축 늘어져 눈을 반이나 가렸다. 그 반쪽의 눈길은 적의로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원희는 그 눈길을 바라보자 자신이 층간소음의 극심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망각할 뻔했다. 자신이 노인에게 무언가를 잘못한 것만 같았다. 노인이 먼저 말을 뱉었다. 가래가 끓는지 목소리는 칠판 긁는 소리를 냈다.
“이번에 이사 온 처자구먼. 인사는 안 한다 쳐도 피차간에 지킬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감? 아래층 이사 간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개는 왜 남겨놓은 거야. 내가 정말 그 개 짖는 거 때문에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어. 도대체가 공동으로 생활하는 곳에서 개를 기른다는 거부터가 잘못됐다 그 말이야.”
원희는 어이가 없었다. 새벽에 시끄러우니 주의해 달라고 온 자신에게 도리어 콩이가 시끄럽다고 면박을 주고 있었다. 콩이가 요란하게 짖은 적이 있기는 했다. 콩이가 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캉캉 짖기에 원희가 현관문을 살짝 열고 내다봤더니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콩이는 노인이 101호 앞을 지날 때만 왕왕 짖었다.
“그건 제가 주의 주겠는데요. 할아버지도 좀 조심해주셨으면 해요. 새벽에 잠을 자야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잖아요. 새벽 네 시는 모든 사람이 활동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에요.”
“그러니까 나보고 일어나면 쥐죽은 듯 있어라, 그 말 하려고 이렇게 찾아온 거구먼. 말 한번 잘했네. 그러니까 101호가 자야 하니까 나는 일어나면 화장실도 가지 말고 그러라는 건가? 그런 걸 따지려면 이따위로 집 지은 건축주에게 가서 따질 일이지, 나에게 와서 이러는 게 말이야, 뭐야, 썩 꺼져!”
노인은 원희의 앞에서 문을 쾅 닫았다.
원희는 빌라 총무인 301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빌라 반상회를 알려주려 전화했다는 301호는 201호 노인에 대해서 긴 얘기를 했다. 이미 원희와 201호 노인의 충돌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301호 여자는 이른 저녁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201호 노인 때문에 거실 바닥에 아이들이 있는 집이나 깐다는 매트를 깔았다. 301호 여자는 밤 여덟 시쯤에 생각 없이 마늘을 찧다가 노인의 잠을 깨웠고 노인으로부터 지팡이를 휘두르는 막무가내의 호통을 들은 후 노인이 자는 시간에는 숨을 죽이며 살고 있노라고 했다. 301호가 그 후에는 노인과 더는 충돌은 없었다고 말하자 원희는 301호 여자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했다.
나도 숨을 죽이며 살란 말인가. 콩이에게 성대 수술이라도 시키라는 건가.
계속 떠드는 301호가 앞에 있다면 원희는 그 여자의 입에 지퍼를 채우고 싶었다.
빌라 반상회는 계단 대청소 회의 안건이 끝나자 반상회에 절대 참석하지 않는 201호 노인에 대한 험담과 불만으로 채워졌다. 노인 외에도 참석하지 않은 빌라 사람의 뒷말이 무성했다. 원희는 빌라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은 자신의 험담을 하는 게 두려워 반상회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원희는 뒷말 같은 거 신경 쓰지 않을 것이므로 다음부터는 이런 반상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평소에 집밖에 잘 나오지 않고, 반상회에서도 한마디 말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반상회가 끝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원희를 보며 빌라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원희가 외출에서 돌아오니 빌라 사람들 몇이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콩이를 안고 있는 원희에게 301호가 말했다.
“201호가 쓰러져서 일일구가 와서 싣고 갔어. 마침 요양보호사가 있을 때 쓰러져서 빨리 신고한 거지. 오늘따라 몸이 불편했던지 노인당에도 가지 않고 집에 있었던가 봐.”
빌라 전체의 소식통을 자처하는 301호가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정보를 원희에게 전달했다.
“요양보호사가 바뀌었던데?”
502호가 물었다.
“그 노인네, 전의 요양보호사를 식모 부리듯이 하다가 한 소리 먹었잖아. 그 요양보호사 그만두고 다른 사람 온 거야.”
301호는 요양보호사에게 들었다면서 201호 노인의 경우는 쓰러졌을 때 얼마나 빨리 병원으로 갈 수 있냐가 생과 사를 가른다고 말했다.
“노인이 혼자 살면 이런 게 문제라니까. 모두 201호에서 무슨 낌새 있으면 후딱 일일구 부르고 서로 알리고 해야 해. 어쨌든 우리는 한 지붕 가족이잖아.”
301호의 끝없이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원희는 교직 생활 중에 배워둔 심폐소생술을 생각했다.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은 4분이었다. 4분 안에 심폐소생술을 하면 살 가능성이 두 배, 세 배 향상됐다. 실습 때에는 흉골 아래쪽 절반 부위에 깍지 낀 두 손을 빠르게 눌러줘야 했다. 분당 백회가 넘는 동작에 원희는 자신의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원희는 201호 노인이 자기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려 원희가 무릎을 꺾고 노인 옆에 앉자 노인이 반쯤만 보이는 눈알을 원희에게 부라렸다. 원희는 자신이 노인에게 심폐소생술을 행하는 상상을 고개를 흔들며 지워버렸다.
201호 노인은 멀쩡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원희는 호주에 있는 원철과 통화했다.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원희는 201호 노인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해주지 않은 동생에게 섭섭한 마음을 전했다.
“누나, 201호는 빌라 사람들 모두한테 그렇게 대하는 사람이야. 사실 그 빌라를 지은 사람이 그 집 아들이거든. 자기 아들한테 따지라는 건데 그 아들이라는 작자는 아버지만 그 빌라에 남겨놓고 왕래를 하지 않아서 201호가 빌라 사람들에게 화풀이 하나 봐.”
이런 말 이후에 원철은 호주 생활의 막막함과 외로움을 쏟아냈다. 왜 옛말에 보리 한 말이라도 있으면 처가살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는지 알겠다며 원희에게 하소연했다. 그런 동생에게 원희는 자신의 불편함만을 얘기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 원철아, 너도 마음 붙이고 잘살아 봐. 나도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원희는 원철과 통화를 마친 후 원철에게 201호에 괴팍한 노인이 있다고, 층간소음이 심하다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이 빌라로 이사 오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원희는 두 살 아래인 원철에게는 무슨 말이든지 모질게 하지 못했다. 그건 피비린내 나는 전선을 같이 치러낸 전우애와도 비슷했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비밀독립운동하던 동지애와도 비슷했다. 아버지라는 전쟁터, 아버지라는 식민지를 원희와 원철은 힘겹게 지나왔기 때문이었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면 뺨을 때리던 아버지의 주취 행사는 원희와 원철이 구구단 정도는 다 외우는 고학년이 됐을 때는 세계의 여러 나라와 수도 외우기로 넘어갔다. 아버지가 사회과 부도를 갖고 오라고 하고 거기에서 어떤 나라를 말하면 원희와 원철은 그 나라의 수도를 맞춰야 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들의 수도는 암호 같았고 외계어 같았다. 구구단 외우기와 같은 이유로 원희는 아는 나라의 수도가 있어도 모른다고 하고 뺨을 먼저 맞았다. 오직 아버지의 행패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나는 절대로 아빠 같은 사람하고는 결혼하지 않을 거고,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이 말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입술을 꼭꼭 깨물었다. 원희의 입술은 자꾸 부르텄고 심하게 맞은 날은 뺨에 멍이 들었다.
노인의 새벽 소음은 계속되었다. 불면증이 심한 원희는 의사로부터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도 해봤지만, 새벽에 층간소음으로 어김없이 깼고 신경은 칼로 벼린 듯 날카로워졌다. 2층 천장을 향해 막대기로 쾅쾅 찌르고 싶었다. 원희는 베란다에 있는 대걸레로 천장을 마구 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런 상상을 해도 원희는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고 그걸 실행하지 않는 건 자신이 배운 사람이며 201호만큼 망가지진 않았다는 증거라 여겼다.
원희는 새벽에 201호의 층간소음을 견디기 위해서 귀마개를 하고 자다가 이것도 모자라 백색소음을 들려주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잠들었다. 얕은 잠이 들었기 때문에 늦은 아침에 깨면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도 원희는 자신이 양보하여 층간소음의 타협점을 찾아낸 게 흡족했다. 그러나 일방적인 원희의 양보로 이루어졌던 일시적인 새벽의 평화는 더 깊은 크레바스를 감추고 있었다.
혼자 외출할 일이 생겨서 원희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콩이가 재빨리 현관문을 빠져나갔다. 평소에 그것을 대비해 미리 콩이에게 간식을 줘서 주의를 다른 데 돌리고 현관문을 여는데 그 날은 원희가 깜박하고 잊어먹었던 터였다.
“아이쿠, 요놈의 개새끼!”
노인이 복도에 쓰러졌다. 밖으로 나온 원희 쪽으로 달려오는 콩이를 노인이 지팡이로 후려쳤다. 콩이가 깨갱, 깨갱 하고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원희는 스프링이 튕겨 나가듯이 달려가 콩이를 안았다. 콩이는 원희 품에 안겨서도 바르르 떨면서 낑낑댔다. 원희는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나, 이 어린 걸, 그 지팡이로……
“이봐요! 내가 혼자 산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말로 해도 되는데 왜 때리고 지랄이세요!”
“이게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개새끼 간수 못 해서 사람 놀라게 한 건 안 보여? 내가 요놈 튀어나오는 바람에 놀라서 자빠졌단 말이야. 아이구,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노인은 콩이를 때리던 기세를 버리고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대면서 죽는시늉을 했다. 밖의 소란을 듣고 301호가 1층으로 내려왔다. 301호가 201호를 부축하며 일으키자 201호는 더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드러누울 기세였다.
“할아버지, 일어설 수 있겠어요? 아드님, 부를게요.”
“걔는 왜? 됐어!”
201호는 301호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101호, 참아. 일단 할아버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강아지 데리고 빨리 병원에 가봐.”
원희는 그제야 콩이가 다치지 않았는지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도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다 찍을 거야. 치료비 청구할 테니까 그리 알아.”
노인이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 같은 한 지붕 가족끼리 좋게좋게 가자고요. 할아버지도 잘못 했어요. 요즘 개 때리면 동물 학대다 뭐다 큰일 나요.”
301호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301호는 201호가 끝내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원희에게 전했다. 다치지 않았는데 아들한테 연락 가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그런 거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한 건물에 사는데 인정이라는 게 있잖아. 201호에 음료수라도 사 들고 찾아가서 괜찮은지 여쭤보는 게 도리 아니겠어? 자기네 강아지 좀 시끄럽고 유별나긴 하잖아. 참, 강아지는 괜찮은 거야?”
다행히 콩이는 다친 데는 없었다. 콩이는 그 날 이후로 현관문이 열려도 튀어나가지 않았다. 복도로 201호 노인이 지나가는 기척이 들리면 캉캉 짖던 콩이는 짖기는커녕 꼬리를 다리 사이에 숨기고 바들바들 떨었다. 201호 노인은 항상 지팡이를 짚고 다녔기 때문에 복도 바닥을 울리는 지팡이 소리가 들리면 콩이는 자기 몸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싶기라도 한 듯이 몸을 말고 덜덜 떠는 하나의 진동체가 되었다. 콩이는 먹는 양도 줄었고 그렇게 좋아하던 간식에도 시큰둥했다. 콩이에게 남은 후유증에 대해서 원희는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기만 했다. 음료수를 사 들고 찾아가 음료수병을 201호 현관문을 향해 모두 던져 박살 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팡이 소리가 들리면 콩이 대신 원희가 현관문 앞에서 화를 삭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원희가 그러고 있는 걸 모른 채 노인은 101호 앞을 지날 때면 캬악 하고 가래 끌어올리는 소리를 냈다. 캉캉 짖지 않는 콩이를 도발하려는 목적이라면 노인은 성공한 셈이었다. 콩이는 다리 사이에 꼬리를 말고 점처럼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이 세상에서 개가 낼 수 있는 가장 가련한 신음을 흘렸다. 그 신음은 원희의 오장육부 안을 긁어내는 송곳이었다. 원희는 그 송곳으로 누군가를 찌르지 않으면 자신의 내부에 흘린 피 속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
원희는 천장을 울리는 쿵쿵 소리에 위를 쏘아봤다. 잠시 후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변기 물이 천정에서 쏟아지는 것처럼 원희는 얼굴을 가렸다. 원희는 며칠 전에 베란다 문을 열었다가 베란다 난간 가림 쇠에 누리끼리하게 말라붙은 가래를 보았다. 201호 노인이 일부러 조준하고 뱉지 않았으면 떨어질 수 없는 각도였다. 그때도 가래가 자신의 얼굴 위로 떨어진 것처럼 원희는 얼굴을 가렸던 터였다. 콩이를 때린 사건 이후로 노인은 더 안하무인이 된 거 같았다. 원희는 백색소음으로 깔아놓은 유튜브의 빗소리 볼륨을 높였다. 콩이가 귀를 쫑긋거렸다. 빗소리가 거세졌다.
쿵!
원희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원희는 그 소리가 노인이 쓰러지는 소리임을 직감했다. 그 소리는 거대한 매머드가 원시인들의 무수한 화살과 손도끼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 소리는 거대하고 위엄이 없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원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는 양을 콩이가 빤히 쳐다봤다. 원희도 콩이를 쳐다봤다. 눈으로 무슨 모의라도 하는 것처럼 오래 쳐다봤다.
201호로 뛰어 올라가 문을 두드리고 무슨 일인지 알아볼 수 있겠지.
참견 좋아하는 301호에게 전화해서 201호 노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원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래전 그때처럼.
*
주점에서 열 시에 출발했다는 아버지가 두 시간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날의 폭력을 예습하고 있던 남은 가족들은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한겨울이었고 간간이 진눈깨비가 날렸다. 원희의 엄마는 아버지가 주점에서 집으로 오는 쪽의 길을 가보기로 했고 아버지가 올 때까지 잠자지 못하고 졸고 있던 원희와 원철은 반대쪽 길로 향했다. 원희와 원철은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이렇게 추운 밤에 아버지를 찾아다닌 걸 알면 그날 분량의 폭력을 감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였다. 원희 엄마가 마을회관까지 갔다가 아버지를 못 찾으면 그대로 돌아오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원희와 원철은 마을회관까지 걸었다.
원희는 마을회관에 막 도착하기 전에 원희 쪽의 시멘트로 된 수로 고랑에 희끄무레한 무엇인가가 엎어져 있는걸 보았다. 원희는 머릿속에서 큰북이 둥둥 울리는 것만 같았다. 큰북은 심장 속에도 있었다. 심장에 몰려있던 피가 머리로 갑자기 몰려와 원희는 구역질이 났다. 원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원희는 자신이 떠는 것을 추위 때문이라고 생각하도록 원철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마을회관까지 다 가자 원희는 손을 바꿔 잡아 원철이 그 고랑 옆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 문제의 그 수로를 지나칠 때 머릿속과 심장에서 울리던 소리는 금방이라도 원희를 고꾸라뜨릴 것 같았다.
저건 분명 아버지가 아니야, 아버지가 아니야, 아버지는 이 길로 다니지도 않아.
원희에게 수로에 빠져있던 건 바람에 굴러다니던 회색 석유통이 되기도 했고 마을 사람이 몰래 버린 부피가 커다란 비닐봉지가 되기도 했다. 수로에 빠져있던 석유통이 서서히 아버지 형상을 갖추며 원희를 쫓아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나라의 수도를 말하라고 할 것 같았다. 거대한 비닐봉지에서 손과 발이 튀어나와 아버지 모습을 갖췄다. 원희는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원희는 원철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집으로 뛰었다.
원희 아버지는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원희는 면회시간에도 중환자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루를 못 버티고 죽자 원희는 자신이 자꾸 무서워졌다.
*
심폐소생술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 4분. 원희의 머릿속을 무성한 촉수가 자라나 빽빽하게 채우는 것 같았다.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래 긁는 소리를 내는 201호, 술취한 아버지처럼 반쯤만 눈을 뜨는 201호, 콩이를 후려치던 201호, 앞으로도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여길 노인, 아버지처럼 뒈져도 좋을 노인!
원희는 머리를 감싸고 얼굴을 이불에 묻었다. 원희는 다시 누웠다. 머리 위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콩이가 다가와 이불 속으로 자기를 들여보내 달라는 듯이 발로 이불을 긁었다. 원희는 콩이를 끌어안았다.
우리 오랜만에 단잠을 자자. 꿈도 없는 죽음 같은 잠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
*
201호 노인이 들것에 실려 내려왔다. 노인의 얼굴까지 하얀 시트가 덮여있었다. 아침 공기를 찢는 구급차 소리에 빌라 사람들 몇이 빌라 현관에 나와 서성였다. 원희는 잠을 자지 못했고 환청처럼 구급차가 빌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전부터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을 때 원희는 하지 않던 숙제를 해치운 것처럼 조급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빌라 앞에서 정점을 찍기 전에 원희는 콩이를 안고 일찌감치 밖으로 나왔다.
들것이 옆을 지나칠 때는 시트에 가려지지 않고 비쭉 튀어나온 노인의 손이 자기를 잡아챌 거 같아 원희는 움찔 옆으로 비켜섰다. 저 여자가 나를 죽였어. 노인의 손가락이 원희를 가리킬 것만 같았다. 콩이가 몸을 떨었다. 원희는 콩이를 더 꼭 안아 주었다. 원희는 노인이 죽은 마당에 콩이가 왜 떠는지 의아했다.
괜찮아. 이제 저 201호는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원희는 들것이 구급차에 태워질 때까지 빌라 사람들 무리에 섞여 들것을 따라갔다. 원희는 노인의 손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 들은 거 없어? 난 한번 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거 다 알잖아.”
구급차가 시신과 노인을 발견한 요양보호사를 태우고 떠나자 301호 여자가 모여있던 빌라 사람들에게 물었다. 원희는 301호가 자신에게 묻는 거 같았다.
“요즘 잠을 못 자서 수면제 먹고 잤어요. 정말 쥐죽은 듯 잤어요.”
원희는 자신이 뱉은 거짓말을 되새김질했다. 쥐죽은 듯이를 노인 죽은 듯이라고 말해버린 건 아닐까 하고.
“그럴 거야. 201호가 새벽부터 설쳐대니까 수면제 힘이라도 빌려야지. 시간 되는 사람들은 우리 집에 가서 마저 얘기하자.”
301호가 원희에게 등을 보이며 빌라 여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일이 있어서……”
원희는 빌라 여자들의 끄덕임이 집에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이라도 되는 듯이 고개를 까딱하고 자신의 집인 101호로 들어갔다. 모여있던 빌라 여자들은 301호로 우르르 몰려갔다.
원희는 노인의 무거운 들것을 혼자 옮긴 것처럼 피곤했다. 원희는 거실 소파에 누웠다. 잠시 후, 원희는 쿵쿵 바닥을 걸어가며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노인이 죽어 떠난 201호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건 확실했다. 301호로 몰려간 여자들이 마음껏 소음을 내고 있었다.
끊임없이 소리가 들렸다.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차려 먹는지 의자 끌리는 소리가 한바탕 쓸고 지나갔다. 콩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귀를 쫑긋거렸다. 노인이 살아있을 때처럼 불안해하며 몸을 콩처럼 말았다. 빌라 여자들은 노인이 떠난 주말 아침에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며 차를 마시기로 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다시 부엌 위치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렸고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원희가 누워있는 거실 위쪽으로 몰려왔다.
원희는 베란다로 달려가 대걸레를 가져왔다. 대걸레의 손잡이를 위로 올려 천장을 마구 찔렀다. 대걸레에 붙어 있던 먼지와 오물이 원희의 얼굴 위로 쏟아졌고 박수 소리처럼 쿵쿵 소리가 계속 들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