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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살이꽃

김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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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머니!”

나는 문을 열고 뛰어들어가며 할머니를 찾았다. 하지만 여러 번 불렀는데도 할머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평소 같으면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구, 우리 강아지’ 하며 벌써 나를 안아주었을 텐데 말이다. 주무시나? 할머니 방문을 열어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엄마아빠 방에도, 내 방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화장실까지 찾아봤는데도 할머니는 없었다.

“엄마, 할머니가 안 계셔.”

“어디 가셨지? 요즘 기억도 가물가물 하시면서….”

엄마는 할머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휴대폰을 귀에 가져가기 무섭게 거실 소파에서 “띠리리리링” 벨소리가 들렸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 왔다.

“할머니, 어디 갔었어요? 할머니 주려고….”

할머니한테 말을 걸려는 나를 엄마가 조용히 말렸다. 엄마는 할머니를 부축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좋아하는 감자 사왔다고 말을 해야 되는데, 할머니가 감자를 보면 좋아할텐데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고….’

나는 서운한 마음에 내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빼놓지 않고 보던 터닝메카드 애니메이션도 보지 않았다. 어제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했지만 꾹 참았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에게 다 이를까 하다가 지금 먼저 나가면 내가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방에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문틈 사이로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오늘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말하나 보다.

“어머니 상태가 점점 심해져요. 그날 이후의 일은 기억을 못하시는 것 같아요. 오늘도 팽나무에 가 계신 것을 겨우 집으로 데려왔다니까요. 감자를 숨기는 것도 더 심해지셨어요.”

“큰일이야. 약으로 고칠 수 있는 병도 아니니 원. 하긴 어릴 때 그렇게 큰일을 당하시고 여태 잘 버티셨지. 옴팡밭에서 당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봤으니…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받은 게 감자였대. 더 심해지면 병원으로 모시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어.”

엄마, 아빠의 이야기는 한참 계속되었다. 내가 삐져있는 것은 신경이 안 쓰이나 보다. 점점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부릅뜨고 버티다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할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몇 번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했다.

“사라야, 오늘은 왕할아버지 제사니까 학교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오렴.”

“오늘 축구 시합이 있는데….”

“엄마는 제사 준비 때문에 바쁘니까 네가 할머니를 돌봐드려야지.”

“네….”

오늘은 3반과 자존심이 걸린 축구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지난번에 아깝게 지는 바람에 내가 극구 우겨서 오늘 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큰일이다. 내가 못 뛴다고 하면 분명 지성이가 한소리 할 거다. 학교에서 지성이를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쉬는 시간마다 일부러 화장실, 매점, 교무실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아직 까지는 지성이가 나를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 이대로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가면 될 거다.

마지막 시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술시간이다. 짝꿍인 창호보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간만 되면 신이 났다. 수학 문제를 거드름 피우며 가르쳐주는 창호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엄마를 졸라 물감도 새로 샀다.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 기대가 됐다. 미술선생님은 제주도 신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락궁이는 서천꽃밭에 도착했어요. 서천꽃밭에는 뼈살이꽃도 있고, 살살이꽃도 있고, 숨살이꽃도 있었어요. 한락궁이는 그 꽃을 얻어다가 죽은 어머니를 다시 살아나게 했답니다. 신기하죠? 서천꽃밭은 모든 꽃이 있는 곳이에 요. 행복을 주는 꽃도 있고, 벌을 주는 꽃도 있어요. 여러분들도 자신이 갖고 싶은 꽃들이 있을 거예요. 만약 서천꽃밭에 갈 수 있다면 가져오고 싶은 꽃 한 가지를 그려보세요.”

“선생님, 꼭 한 가지만 그려야 돼요? 여러 꽃을 가지고 오고 싶은데요?”

쉬는 시간마다 계속 무언가 먹어대는 욕심쟁이 동호다운 질문이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되죠. 딱 한 가지만, 그리고 그 꽃은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진짜로 갖고 싶은 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보세요.”

어떤 꽃을 그려야 할까. 한 가지만 고르려니 무척이나 어려웠다. 옆에 앉은 아이들이 어떤 꽃을 그리는지 슬쩍 훔쳐보았다. 짝꿍인 창호는 역시 공부벌레답게 ‘시험을 잘 보는 꽃’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거울을 보는 태희는 ‘예뻐지는 꽃’을 그리고 있었다. 체육부장인 지성이는 ‘축구 잘하는 꽃’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갖고 싶은 꽃은 뭘까. 수학문제를 잘 푸는 꽃도 가지고 싶고, 실컷 터닝메카드를 사게 부자가 되는 꽃도 가지고 싶었다. 게임 잘하는 꽃이 있으면 아무도 나한테 도전하지 못할 거다. 이 꽃을 고르려니 다른 꽃이 생각나고, 저 꽃을 고르려니 이 꽃이 아쉬웠다. 뭔가 더 좋은 것이 있을 것만 같은데…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스케치북에 그려진 꽃 옆에 후보 이름들만 잔뜩 써 넣은 상태로 미술시간은 끝나버렸다.

아뿔싸, 꽃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동안 지성이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았다.

“오늘 3반하고 축구시합 있는 거 알지?”

“미안…, 오늘은 왕할아버지 제사라서 일찍 집에 가야돼.”

“뭐야! 니가 다시 하자고 한 거잖아.”

지성이는 씩씩대며 가버렸다. 꽃 그림에 ‘축구 대신 뛰어 주는 꽃’이라고 이름을 쓸까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음식 준비로 바빴다. 할머니는 방에서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엄마 잠깐 시장에 갔다 올게. 밖에 나가지 말고 할머니 잘 돌봐드려야 한다. 할머니가 어디 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집에 있어야 돼.”

“응, 엄마 걱정마. 내가 할머니랑 잘 놀고 있을게.”

“우리 사라 다 컸네. 그럼 엄마 간다.”

엄마는 불안한지 할머니 방을 들여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피곤하셨는지 방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잠만 잤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 게임만 신나게 했다. 하지만 혼자서 하려니 점점 심심했다. 그때 지성이한테 카톡이 왔다.

- 3반하고 축구시합은 못했어. 학원에 가야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대신 우리집에서 터닝메카드로 3:3 시합을 하기로 했어. 같이 안할래?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었다. 축구시합을 하지 못한 게 나 때문인 것 같아 지성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는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지성이네집은 우리 아파트 바로 옆 동이라 잠깐 나갔다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알았어. 딱 한 판만.

나는 터닝카와 메카드를 챙겨 할머니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지성이네 집까지 들뜬 마음으로 달렸다. 지성이한테는 대회에 나가서 경품으로 받은 터닝메카드 배틀 시연대가 있다.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거다. 배틀 시연대 위에서 게임을 하면 바닥에서 하는 것보다 뭔가 그럴듯했다. 아이들은 지성이네집에서 터닝메카드 시합을 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나는 집이 가까워서 세 번이나 해봤다. 지성이네집에 도착하니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자, 시작하자.”

그렇게 시작한 터닝메카드 시합은 치열했다. 첫 번째 판은 우리가 지고 말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야! 한 판 더 해.”

이번 판은 우리의 승리다. 3반 아이들이 다시 도전해 왔다. 한 판만 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 계획은 이미 머리 속에서 지워졌다. 한 판이 두 판이 되고, 두 판이 열 판이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의 전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라야, 엄마가 시장에 좀 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할머니는 잘 계시지?”

“아… 응. 아직까지도 자, 자….”

“그래? 오래 주무시네. 알겠어. 엄마 금방 들어갈테니 조금만 참아.”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야, 나 집에 가야겠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아직도 자고 있겠지. 그럴거야.’

집으로 가는 내내 아무 일 없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는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새 할머니가 밖에 나간 것이다.

‘큰일났다. 엄마가 올 때가 다 됐는데, 할머니가 없어진 것을 알면 혼날거야.’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할머니를 찾아서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혹시 내가 사온 줄모르고 감자를 사러 간 건 아닐까? 할머니가 자주 가던 집 앞 슈퍼에 달려갔다. 할머니는 슈퍼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고 이야기를 나누러 종종 가곤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혼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저 혹시 우리 할머니 못 보셨어요?”

“아니, 못 봤는데, 어디 가셨니?”

“아, 아니요. 안녕히 계세요.”

할머니가 집을 나간 것이 들킬까봐 얼른 빠져 나왔다. 그때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하던 팽나무가 생각났다.

‘그래 그 팽나무에 갔을지도 몰라’

커다란 팽나무가 있는 곳은 동네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그 팽나무에 가기를 꺼려했다. 그 나무에 올라가려고 하면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쫓아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관광객들이 찾아와 팽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지나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혼자 그 나무에 가는 것이 무서웠지만 할머니를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지성이네 집만 안 갔어도 할머니를 나가지 못하게 했을 텐데. 엄마한테 전화를 할까. 아니야, 걱정 말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혼만 날거야.’

밭에 가까이 갈수록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때문에 더 무서웠다. 팽나무 아래에 누군가 있었다. 할머니였다.

할머니 옆에는 감자들이 놓여 있었다. 엄마가 자꾸 숨겨둔 감자를 가져가 버려서 여기에서 몰래 먹으려고 했나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가 나갔을 때 할머니를 깨우는 건데. 그랬으면 밖으로 나오는 일도 없었을 거다. 할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려고 하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감자를 한 손에 꼭 쥐고 울고 있었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때 어디선가 ‘탕’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할머니가 쓰러졌다. 멀리서 까마귀 무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사라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봤다. 엄마와 아빠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여기에 왔을까. 그래도 엄마, 아빠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사라야 괜찮니?”

엄마, 아빠 얼굴을 보는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 미안해. 내가, 할머니를….”

“괜찮아. 엄마가 미안해. 사라 혼자 두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할머니가… 할머니가….”

아빠가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옆집 할아버지가 내가 할머니를 찾는 것을 보고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구급차에 실려 갔다. 아빠는 할머니를 따라갔다. 나는 엄마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나무 아래서 쓰러지는 할머니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집에 와서도 울며 잠이 들었다. 엄마는 내 곁에서 잠이 들 때까지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할머니는 바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잠이 깨지 않아 병원에 오래 입원을 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나는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미술시간에 스케치북을 넘기다 지난번에 이름을 정하지 못한 꽃 그림을 보았다.

‘그래! 죽은 사람을 살리는 꽃도 있으니 분명 기억을 되살리는 꽃도 있을 거야. 그 꽃만 있으면 할머니가 기억을 되찾아서 나도 기억하고, 집에도 잘 찾아올 수 있겠지.’

나는 그 꽃의 옆에다 ‘기억살이꽃’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꽃이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가위로 오렸다. 오늘은 엄마한테 할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이 꽃을 잠을 자고 있는 할머니 손에 쥐어줘야지. 그러면 한락궁이가 죽은 어머니를 다시 살려낸 것처럼 할머니를 다시 깨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를 말이다.

 

 

『잔소리 주머니』(2017, 파우스트) 수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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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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