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태국여행기 10~12
2017년 10월 8일-태국여행기 10
태국의 어디라도 그렇지만 내가 묵고 있는 치앙마이에도 불교사원이 정말 많다. 규모로만 봐도 국보급인 화려한 사원들이 두 블럭 건너 하나 꼴로 있다. 갯수도 갯수거니와 그 화려한 표현력 역시 동남아 최고의 관광지가 될 만 하다. 화려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눈이 뱅글뱅글 돌 지경이다. 온통 번쩍번쩍 금 세상이다. 지붕 끝마다 태국전통 무용수들의 손톱같은 장식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건물들도 마찬가지. 지금은 세월이 흘러 거의 골동품이 되었지만 창문이나 처마, 기둥, 지붕들의 예의 그 화려함에 이끼들이 기대어 산다. 다 쓰러져 가는 건물들인데도 헐지 않고, 한 주먹의 시멘트나 페인트로 조심조심 기운다.
태국의 천년왕국 골목들을 돌아다니면서 나의 이런저런 생각들은 문득 유럽의 모더니즘에 이른다. 유럽 모더니즘의 태동에 산업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르 꼬르뷔지에가 널리 성공시킨 모더니즘 건축물의 유행과 발전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과 거의 동시적이다. 폐허 위로 빠르게 짓는 건축술인 것이다. 나름대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양차 세계대전 이전의 전쟁들은 화기가 발달하지 않은 전쟁이었고 따라서 대규모의 파괴가 없었다. 성과 왕궁,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유적들은 점령의 대상이었을 뿐 파괴의 대상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인류는 그전까지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초대형의 파괴를 겪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쌓아올리는 이 피라미드가 영원을 상징한다는 것에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더니즘은 미학이라기보다 정신에 가까운 것 같다. 지그재그로 쉼없이 움직이던 심장 파동이 일직선을 그리는 것 같이 그런 소멸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는 이 태국왕조의 건축물 같은 것을 짓고, 또 그것을 천년동안 보전할 수 없으리라 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일회성 정신.
단 한 차례도 타국의 식민지가 되어 본 일이 없고, 따라서 한 번도 터전의 파괴를 겪지 않아 좀처럼 건물을 헐지 않고 끊임없이 보수하고 덧칠하여 건물 하나하나에도 족히 백년의 시간이 느껴지는 태국의 거리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사족을 이야기하자면 간간히 있는 태국의 모더니즘 건물들은, 이젠 모더니즘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서구의 건물들에 비해 전혀 아름답지 않다. 그러고 보니 모더니즘에도 시간의 결이 쌓인다.
오랜 세월 기른 손톱같은 곡선미의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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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9일-태국여행기 11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것들 혹은 착각한 것들 1
제주에 처음 이주해왔을 때 내 눈에 가장 재미있게 보였던 것은 샤시문을 잠그는 방식이었다. 샤시 틀이 맞물리는 곳에 못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구멍을 뚫고 그 위에 자물쇠 장치를 달아, 문을 잠글 땐 못을 관통해 두 문이 서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해 놓은 후 다시 그 못을 빼지 못하도록 자물쇠 판으로 덮고 열쇠를 채운다. 못은 어디 굴러다니지 못하게 실로 대롱대롱 묶어놓는다. 보면 간단하지만 설명은 한참 긴 제주의 샤시문 잠그는 방식이 내겐 재미있고도 사랑스럽다.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도 몇년 전까진 그렇게 못을 넣었다 빼었다 하며 출퇴근을 했었다.
바다 하나만 건너도 그런데 국경을 넘어서야 정말 다른 것 투성이다. 지금은 글로벌시대라 사는 방식과 소비하는 재화가 거의 비슷해졌지만 곰곰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우선 착각한 것 하나를 이야기해보자면 하루는 숙소 근처의 새벽 재래시장을 구경갔는데 넓적한 대나무 잎으로 싸인 우리나라의 삼각김밥과 흡사하게 생긴 게 있었다. 대나무 바구니에 촉촉히 윤기를 휘감은 채 쌓여있는 그것을 나는 당연히 찰밥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새벽녘 배도 고픈 김에, 5밧이라는 싼 가격에 냉큼 하나 사 들고 숙소에 들어와 펼쳐보니 그것은 새벽의 쾌변을 닮은 된장이었다.

도무지 알수 없는 물건들을 사는 여행의 재미
2017년 10월 10일-태국여행기 12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것들 혹은 착각한 것들 2
그리고 착각에 착각을 거듭하며 아직도 오리무중인 것 하나. 그것은 방콕 공항에서부터 발견했던 것인데 태국은 화장실 어디에나 양변기 옆에 작은 샤워호스가 딸려 있다. 공중화장실, 숙소의 개인 화장실, 기차의 화장실 등 어느 화장실에라도 호스 앞쪽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폭좁은 물줄기가 쏟아지는 샤워호스가 있는 것이다. 처음에 당연히 생각했던 것은 태국의 아닐로그식 비데. 하지만 차마 실험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한번 사용했다간 마치 옷에 실례를 한 것처럼 다 젖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형이긴 하나 우리가 쓰는 일반적인 비데에 비하면 한다발의 물줄기다. 현지인의 능숙함이 비결이겠지 하며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외출했다가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무릎 바로 아래까지 차오르는(단 몇십 분 만에) 흙탕물을 헤치며 돌아왔었다. 오래된 도시를 씻어내리며 쏟아지는 비라서 내 발이 잠겨있는 흙탕물에서 배가 뒤집힌 채 둥둥 떠 있는 바퀴벌레도 몇 마리 보았다. 숙소로 겨우 돌아온 후 발부터 씻기 위해 화장실로 뛰어들었는데 그 소형 비데가 우선 눈에 띄었다. 그걸 이용해 발을 씻으니 물의 세기, 벽에 걸린 위치, 버튼을 눌러가며 씻는 편리함 등이 발을 씻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랬구나. 비데가 아니라 비가 자주 오는 나라의 특별한 환경에서 비롯된 장치였구나 하며 나의 궁금증도 흙탕물과 함께 씻겨졌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교회에 가는 도중 새벽에 내린 비로 곳곳에 고인 흙탕물 때문에 발이 또 한번 더러워졌었다. 자동차의 흙탕물 세례도 두어 차례 받으며 교회에 가는 동안 나는 예의 그 발 씻는 호스를 생각했다. 교회 화장실에도 분명 그게 있을 테니까. 하지만 교회에 도착해 화장실에 가 보니 바닥이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양변기 옆 호스는 당연히 있었지만. 거기에서 호스를 틀고 발을 씻는다면 오랫동안 반들반들 말라있었을 화장실 바닥에 실개천이 흐르며 외국인의 추태를 부리는 것이 될 것 같았다. 역시 이것은 비데였던 걸까. 아직도 이게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숙소에서 그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호스를 가지고 발도 씻고 빨래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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