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찬란함이 무덤에 묻혔다면, 이 영화에선 찬란했던 과거를 보여주려는 걸까, 아니면 무덤이 된 현재를 보여주려는 걸까. 포크레인이 운동장-과거의 무덤-을 파내고 있는 장면은 현재의 욕망과 자본의 효율적인 이익 추구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포크레인이 사라진 마지막 씬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된다.
'엉클 분미'(2010)로 그의 영화를 처음 접했던 그때부터 태국의 정글에서 펼쳐지는 기억과 시간, 환영과 영혼에 대한 영화적 상상과 표현은, 기존에 갖고 있던 영화 감상의 지평을 넓혀주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워낙 이름이 알려졌기도 하고, 언젠가는 봐야 할 영화 목록에 이 영화 또한 항상 들어있기 때문에 언제 봐도 이상할 게 없었고, 으레 그렇듯이 그냥 힘 빼고 보면 된다. 그러면 우선 아름다운 태국의 정글에 시선을 빼앗기고, 몇몇 장면이 순식간에 마음을 파고 들어 앞에서 본 알 수 없는 장면들을 연결시켜주며 일종의 서늘함, 그러니까 영화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하는 그런 서늘함이 느껴진다. 집요하게 파고들려고 하면 더욱 알 수 없어지는 것이 그의 영화의 특성이므로, 어디까지나 힘 빼고 보면 된다. 마치 시처럼.
메마르고 담담한 풍경 아래 포크레인이 땅을 파고 있고, 오래된 학교는 병원이 되어 침대마다 젊은 군인들이 누워서 눈을 감고 있다. 그곳은 과거 어떤 왕국의 왕궁이 있던 장소라고 한다. 과거의 왕국과 지난 시절의 학교, 현재 군인들이 잠든 병원이라는 공간이 중첩되며 시작부터 현실은 이미 통시적 환상에 가까워져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간직하고 있는 사연과 시간이 있다.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영혼과의 대화, 과거 왕국 여신과의 만남, 그리고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그래서 더욱 현실 같은 일상 안에서 서로의 애틋함을 담담하게 확인한다.
특히 마음을 빼앗긴 건 영혼을 불러오는 물리적 방식이다. 한 인물이 나와서 다른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나중에 가면 그 중 한 명은 이미 죽은 귀신이거나 다른 이의 영혼인 것이다. 현실의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등장하여 연기를 하고 사라지는 그 인물이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할 텐데, 배우 두 명을 세워놓고 그 중 한 명한테 ‘넌 영혼이야’라고 선언하면 그만이다. 그럼 그는 그때부터 영락없는 영혼이 되는 것이다. 딱히 설명하지도 않고, 치장하지도 않고, 분장 담당과 카메라맨이 신경 쓸 필요도 없이, 그는 그냥 영혼인 것이다. 초현실적 소재를 너무나 평이하고 사실적으로 연출하는 방식이 인물을 통해 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포개어 두고자 하는 그의 영화에선 매우 효과적이다. 아무것도 없는 숲속에서 젠과 껭은 과거의 왕국을 공유하고, 그 순간 영화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는 그대로 둔 채 관객으로 하여금 사실(=환상)을 보게 만든다. 설득력을 갖게 하기 위해 분장을 하거나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다 할 내러티브 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구조를 통해 인물의 역할이 설득력을 가지는 순간, 극은 무한대의 자유도를 획득하여 현실을 환상으로 만들고 과거를 현재로 중첩시킨다. 켜켜이 쌓인 아주 먼 시간의 침적물이 바로 현재라는 무대를 공유하고 그 시간들의 집적을 날것 그대로 보는 듯한 기분 안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왕국은 여전히 살아있고, 현재의 군인들은 그 왕국의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잠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픽션이 아닌 사실로 다가온다. 주인공 젠은 잠에서 깨지 않는 군인들을 보살핌과 동시에 그 자신의 과거를 치유 받고, 눈을 부릅뜨며 꿈에서 깨는 방법을 실천한다. 보라, 여기에 현실이 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이 영화를 끝으로 이제 더 이상 태국에서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선택하는 우화적인 영화 기법은 예술가의 자기표현이 아니라 태국 군부 정권의 압력과 끊임없는 쿠데타로 인한 혼란한 정세의 생존전략이라고 많은 평론가들은 평한다. 어쨌든 그래서 좀 선언적인 느낌으로 이것을 대하려니, 또 너무 선언적이고 자의적인 관점으로 영화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선언이었고, 나는 이 영화를 과하게 해석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면, 그의 영화에선 언제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이 세계와 이(異)세계가 공존한다. 여타의 작품에서도 그러했듯이, 그는 결국 공존과 화해를 말하고자 한다.
영화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이것 좀 봐, 나는 영화로 이런 것도 할 수 있어.’라고 대답한다.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이 중첩된 세계에서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 안에서 나는 나인가 그들인가 또는 누군가의 영혼인가. 사람들이 공터에서 체조를 하고 있고, 공놀이하는 아이들을 보며 두 눈을 부릅뜬 첸을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가 건네는 이야기를 이제야 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DJ Soulscape의 Love is a song이 배경에 깔리는데, 이 음악의 효과로 앞서 하던 영화의 메시지가 환기되며 나를 현재의 나인 채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인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