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세월에 부역하는 섬에서 

 

 

 

 

  법환동은 서귀포 바닷가 마을이다. 숲에 벌이 많이 살아 ‘벌판’이라 불리다가 법환이 되었다는 설이 전해지지만, 정확한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지명의 변화 속에는 이곳이 오래전부터 자연과 노동이 밀접하게 얽혀 있던 공간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제주공항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한라산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부터 이 지역을 ‘산남’이라 불렀다. 섬 안에서도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야 닿을 수 있는 곳, 그 거리만큼이나 역사적 체감 또한 멀게 느껴지는 곳이 법환동이다.

  서귀포에는 서귀진이 있었을 정도로 방어를 위한 축성이 자리했던 곳이다. 제주는 외침과 약탈을 막기 위해 성과 진, 환해장성, 연대 같은 군사 시설이 촘촘히 들어선 섬이다. 이는 이곳이 얼마나 자주 폭력의 경로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제주는 자연의 낙원으로 소비되기 이전에, 오랫동안 괴로운 형세의 역사를 몸으로 견뎌온 섬이었다.

  범섬이 보이는 곳에 ‘막숙’이 있다. 이곳은 최영 장군과 고려군이 주둔했던 자리로 전해진다. 원의 후예인 목호들은 범섬으로 들어가 항전했고, 고려의 시각에서 그들은 나라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그들은 포용의 대상이 아니라 섬멸의 대상이 되었다. 진압을 지시한 공민왕이 원에서 오랜 볼모 생활을 겪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진압에는 국가적 명분과 개인적 감정이 함께 작동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4·3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목호의 난(1374년)에 이른다. 이후에도 강제검의 난, 방성칠의 난, 신축민란 등 제주에서는 항쟁이 반복되었다. 민란의 원인은 언제나 신분적 차별과 과도한 조세 부담이었다. 그러나 봉건 정부는 도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의지가 없었고, 하나의 봉기는 다음 봉기를 낳는 기억이 되었다. 제주 역사는 그렇게 저항의 연결선 위에서 이어져 왔다.

  4·3의 직접적인 계기에는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이 있다. 그때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민관 총파업으로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행정 권력은 친일 경찰들이 거의 그대로 장악하고 있었고, 국가 폭력은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신축민란 당시 대한제국 봉세관의 수탈과 외세를 등에 업은 종교 권력이 봉기를 촉발했던 역사와 닮아있다.

  이듬해 봄, 별도봉에 봉화가 오르기 전까지 정부는 고문치사와 무차별 투옥을 일삼았다.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한 이념 탄압이었다. 그러나 4·3은 한국전쟁 이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다. 다시 말해 이는 분단이 고착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통일을 향한 움직임이었다. 제주도 사회주의자들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5·10 총선거를 거부했고, 다수의 도민들이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민 전체를 적으로 규정했고, 건국이라는 이름 아래 학살을 자행했다. 4·3은 공권력에 의해 집요하고 장기적으로 자행된 폭력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김남주의 시 「낫」이 말하듯, 민중을 업신여긴 권력이 결국 어떤 결과를 맞는지를 보여준다. 허균이 『호민론』에서 경고한 것처럼, 억압받은 민중은 어느 순간 스스로 호민이 된다.

  목호들이 범섬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자 고려군은 배다리를 만들어 진격했고, 그 과정에서 제주도의 배들이 동원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섬 전체가 전쟁에 강제로 편입되었음을 뜻한다. 제주도민들은 항파두리 토성 축조, 일제강점기 동굴 노역, 4·3 당시 성담 축조 등의 부역을 했다. ‘울력’이라는 말은 공동체의 미덕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늘 강제와 희생이 존재했다. 공동체는 자주 국가 폭력의 하청 구조로 작동해 왔다.

  제주는 오랜 시간 탐라총관부가 있던 곳으로, 이미 목호들과 혈연적으로 깊이 섞여 있었다. 서귀포 한남리에 남아 있는 열녀비의 지아비가 몽골 이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제주도 사람들의 피의 기억은 집단의 상처로 남는다.

  이용악의 시 「오랑캐꽃」은 묘하게도 여진족을 동정한다. 이 땅에는 ‘환향녀’, ‘호로자식’, 그리고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사람들이 있다. 명칭은 달라도 구조는 같다. 타자화된 존재는 언제나 제거의 대상이 된다. 민중은 피아식별 이전에 약자의 편에 서는 감각을 오래도록 간직해 왔다.

  범섬이 보이는 법환포구에는 최영장군승전비가 웅장하게 서 있다. 추자도에 세워진 최영장군 사당 역시 목호의 난이 일어난 해에 지어졌다. 어부들에게 그물 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설화는 권력자의 방문을 미화한 왜곡일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권력자를 기리는 비석을 세우는 것을 보면.

  법환포구는 태풍이 올 때마다 방송국 차량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선택되는 까닭은 파도가 가장 극적으로 찍히기 때문이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난의 맥락이 아니라 화면이다. 섬이 어떻게 되든,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든 상관없이.

  으르렁거리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범섬 옆에는 해군기지가 있다. 이 섬은 오늘도 부역을 수행하고 있다. 법환동의 바다는 여전히 그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

2025 겨울

한라산

문학웹진 <산15-1>은 제주 한라산의 주소에서 이름을 딴 제주 기반의 계간 문학 웹진입니다. 섬과 산이 가지는 상징을 문학의 바다에서 풀어보고자 2017년 제주문학동인 ‘시린발’에서 출발하여, 시옷서점과 제주도 내 개발자 모임의 도움으로 산15-1에 도달하였고, 이후 제주비행접시와의 협업으로 문화예술적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발행하며, 내부 필진과 외부 필진의 작품을 골고루 수록하고, 때로는 의미 있는 작품을 재조명하기도 합니다. ‘산15-1’은 소외된 시간과 공간을 묵묵히 견디며 글을 쓰는 작가들의 문학적 성취를 응원합니다.

만드는 사람들

등짐꾼 : 김신숙(시인)

​산지기 : 김혜연(시인), 오광석(시인), 이재(사진작가), 현택훈(시인), 홍임정(소설가)

​디자인 및 편집 : 이재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