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발차기
문학 웹진 ‘산15-1’은 지속 가능한 원고료 지급을 위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일단 시옷서점의 수익을 문학 웹진 운영비로 충당한다. 부족한 부분을 ‘말장시’에서 마련하는 시도를 해보았다. 올해 상반기에는 보름달 책꾸러미와 시옷싯당 프로젝트로 마련할 예정이다. ‘싯당’은 제주어로 “잠시 머물다 가라”는 뜻이다. 어찌어찌 보름달책꾸러미 완판과 앞으로 ‘달닿학당’ 수익으로 원고료와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시옷싯당 프로젝트’로 이 실험을 이어갈 예정이다.
나는 작년 여름, 정확히는 2024년 8월 15일부터 함덕에 자리한 작은책방에서 주관하는 ‘100일 글쓰기 / 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사람은 문학기반시설 상주 작가로 선정된 강건모 작가였다. 그는 매주 목요일 신엄에서 함덕까지, 제주 서쪽과 동쪽을 분주히 오갔다. 강 작가와의 인연은 몇 해 전 우리가 운영하는 시옷서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손님으로 찾아와 자신이 애월 어딘가에 산다고 소개했다. 안개비를 뚫고 깊은 밤 서점에 도착한 그는 그날 서점에서 진행하는 ‘막동산 문학회 창작시 합평회’에 참여하기 위해 왔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 속에서 나는 강 작가의 강건한 글쓰기 솜씨와 두부 한 모처럼 부드러운 마음씨를 알게 되었다.
강 작가가 근무하던 ‘함덕32’는 제주시 조천읍 함덕로 32에 위치한 복합예술공간이다. 이곳은 문화예술연구소, 도서출판, 서점, 레지던스가 어우러진 장소다. 작년 여름 처음 방문했지만,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공간이다. 그동안에는 은둔형 참여자로 머물렀다. 작은책방을 운영하는 나는 내 공간에 집중해야 했기에 외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마음으로만 응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은둔형 참여자는 오히려 더 지극정성으로 마음을 쏟는 법이다. 나는 인터넷 신문을 통해 작은책방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읽어왔다. 그들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했고, 또 걱정스러웠다. 그동안 쌓아온 지층 같은 지난 프로젝트의 포스터를 살피며, 그 장소에서 미래에 어떤 새싹이 돋아날지를 상상했다. 이렇게 나는 내 작은 공간에서 다른 작은 공간의 미래를 그리곤 한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책방과 책과 인연이 깊은 복합문화공간을 응원하는 것은 나의 취미이자 작은 미신(迷信)이다. 이들은 내게 언제나 작지만 단단한 희망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시옷서점을 8년 동안 운영했다.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책도 결국 상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출판하는 게 꿈이던 나에게, 다시 말해 작가가 되는 게 꿈이던 나에게, 책이 상품이라는 그 당연한 사실은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의식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책이 삶 속으로 녹아들었다고 해야 하나, 녹슬었다고 해야 하나. 가령 나는 소작농의 딸이다. 귤 농사를 지어보면 귤 유통 과정에 대해 알게 된다. 귤 유통은 기후 및 소작 형식은 물론 지자체 행정의 관심 여부에 따라 다양한 무늬를 가진 나비 같은 자세로 삶 속에 내려앉는다.
1998년 IMF 때 소작농이던 아버지가 한해 동안 농사를 지은 귤을 마을 선과장을 통해 뭍으로 보내 받은 돈은 마이너스 400원이었다. 폭락한 귤값보다 물류비용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트럭에 컨테이너를 5단씩 쌓으면 100 컨테이너 정도가 되는데, 한 트럭에 20만 원 정도를 농부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었다. 그 시절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고 과수원마다 돌담 근처에 쏟아부은 귤들이 상해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상심이라는 냄새는 지금도 내 몸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든 명세서 위에는 일 년 동안 밭에서 호흡한 사람들의 숨과 눈빛들이 지층처럼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귤을 딴 인부 삯, 귤밭에 뿌린 농약값, 물값, 밭 주인에게 줄 땅값, 그리고 다섯 남매와 함께 학교 가듯 귤밭으로 성실하게 나가며 수확을 하면서,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자녀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고문 비용도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을 목전에 둔 수험생이었다. 서울로 진학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무늬를 가진 나비가 되어 아버지 어깨 위로 살포시 주저앉았다.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책과 관련된 또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나는 작가가 되어 책을 계약하고, 인지도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는 과정이 마치 정정당당한 계절을 견디며 자라나는 과수원의 열매처럼 진솔한 여정일 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계절이란, 단지 맑고 따스한 날들만이 아니라, 가뭄과 홍수, 한파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시를 쓰고, 등단하며, 인지도 있는 출판사에서 시집을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이 계절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 과정은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에 둘러싸여 있었고, 어린 시절 유아용 그림책 속 삽화로 배운 사계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세계 속에서 뜻하지 않은 다양한 상처와 충격을 경험하게 되었다. 가뭄이 들면 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남의 논으로 가는 물길을 막아야 하듯, 한정된 기회 속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입시와는 또 다른 형태로 작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정해 보이는 체계조차 병들어 있는 고정관념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방을 연 이후, 나는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에서 비롯된 습관들을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멍청한 행동을 자주 한다. 멍청하게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이게 바로 진짜 멍청한 행동이야.”라고 혼자 자랑스러워한다. 보통 사람들은 금전적 이익이 없거나, 금전적 이익을 포기하면 멍청하다고 비웃는 경향이 있다. 내 손바닥에 떨어진 치즈케이크를 보며 “너, 가져.”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환하게 웃고 마음이 따뜻하면 될 것을 비웃기도 하고 더 흉악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난 베풀면서도 망할 거라는 생각도 한다. ‘가난하다’는 말은 ‘망한다’는 뜻이니까. 어떤 삶이 멍청한 삶인지 물으면, 나는 답할 말이 없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인건비가 나오지 않는 작은책방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존경할 만한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치있는 삶이 있다면 나는 그 축에 끼지도 못하지만, 실리와 경쟁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도깨비풀처럼 달라붙는 것을 거부하며 살아갈 것이다. 만약 달라붙어도 하나둘씩 점잖게 떼어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계속 걸어가면 온 세상의 어린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동요 ‘앞으로’의 노랫말처럼, 작은 책방을 운영하며 살다보니 이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 공간이 투명한 실로 이어져 있다는 신뢰를 갖게 되었다. 책방과 사람들을 잇는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전집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거듭 말하지만, 이 믿음은 나만의 토테미즘이다. 토테미즘은 단군 신화의 웅녀처럼, 한 집단의 기원이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식물 같은 자연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믿음이다. ‘토템’은 ‘토하는 아이템’이라고 할 법한 세상에서, 나는 책을 나만의 토템으로 삼는다. 책이라는 미신을 뒤집어쓰고 ‘척척책책’ 나아간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글 쓰는 게 재밌었다. 새벽까지 하루를 끌어와 써도 미래가 두렵지 않은 것이 책이었고 글쓰기였다. 별 뜻 없다. 어느 깊은 밤, 새벽까지 글 쓰고, 책으로 묶으려는 삶을 꿈꾸는 누군가 있다면 나는 그들과 투명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작년 여름, ‘100일 글쓰기 / 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새벽까지 글을 쓸 때가 종종 있었다. 오랫동안 시도 못 쓰고 있으면서, 시 쓰는 수업도 아닌데, 왜 거기에 갔는지 처음에는 나 자신조차 잘 몰랐다. 지난 여름부터 겨울까지 내가 작은 책방에서 쓴 글들은, 어딘가를 향한 빈 활이었다. 그냥 글 쓰는 사람들 곁에까지 나를 끌고 와 마냥 투명한 자세를 갖춰 나간 것이다.
아이가 잠들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무엇인가 대단하고 중요한 사냥을 하듯이 새벽공기를 들이켰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내용의 글을 쓸지 스스로 궁금해서였다는 것을. 내가 살고 싶은 세계는 어떻게 글로 표현될지 궁금해서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목요일마다 엄마 돈 벌러 간다고, 돈 벌어 장난감을 사주겠다며 아이를 떼어놓고 집을 나와 글 쓰러 갔다. 앞으로 혹시나 또 올지 모를 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견디기 위해 갔다. 나는 더 마른 가뭄이어도 나의 논에 물 댈 생각만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갔다. 함께 기우제라도 지내자고 설득하거나 우리 그냥 쌀 대신 이슬을 모아 북유럽으로 수출해 외화를 버는 건 어떠냐고, 그런 멍청한 기획이나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갔다. 그러다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시간에 기댈 수 없을 때 우리는 장소에 기대어 견딘다는 것을,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저물어갈 무렵에도 우리가 머무는 장소는 그 의미와 빛을 발하니까.
‘함덕32’에 가면 정수기 뒤편으로 큰 유리창이 있다. 그 유리창에는 엄지손톱만 한 동그란 스티커가 암호문처럼 붙여져 있다. 하얀색이라 함박눈처럼 보인다. 왜 이걸 붙였느냐고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장소는 무엇을 만져볼 수도, 무엇을 붙여놓을 수도 있는 곳이다. 정수기 앞에서 창밖을 바라보면서, 하얀 스티커가 가끔 몇 개인지 헤아리는 시도를 했으나 멍청이라 맨날 실패했다. 세상에는 이렇게 멍청한 질문들이 많다. 가령 “너 왜 거기 있어?” 이런 질문들 말이다. 백날 ‘함덕32’ 창문에 붙여진 함박눈 스티커에게 물어보라. 어느 날은 스티커가 딱풀처럼 말했다. “멍청하다는 것은 어딘가에 그냥 서 있는 거야. 파란 하늘처럼 맑은 심정으로 푸른 바다에 떨어지는 함박눈처럼. 그래서 넌 오늘 어디에 서 있는 거야? 어디에 붙어 있을 거야?
새로운 발차기를 하듯이 새봄이 찾아왔다. 제주도에는 곳곳마다 인테리어가 멋진 서점들이 피고 지고 또 핀다. 그 와중에 시옷서점은 “인테리어가 모자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문구를 현관문 앞에 붙여서, 시인들의 특별한 순간의 모자나 가지고 와 그 기쁨의 사연들을 기록해 전시하고 싶다는 모자란 생각을 한다.
시옷서점은 최근에 무인책방으로 전환하였다. 서점을 운영하려면 서점에 있으면 안 된다.
- 2025년 봄. 문학웹진 ‘산15-1’ 등짐꾼 김신숙
2025 봄

문학웹진 <산15-1>은 제주 한라산의 주소에서 이름을 딴 제주 기반의 계간 문학 웹진입니다. 섬과 산이 가지는 상징을 문학의 바다에서 풀어보고자 2017년 제주문학동인 ‘시린발’에서 출발하여, 시옷서점과 제주도 내 개발자 모임의 도움으로 산15-1에 도달하였습니다. 계절마다 발행하며, 내부 필진과 외부 필진의 작품을 골고루 수록하고, 때로는 의미 있는 작품을 재조명하기도 합니다. ‘산15-1’은 소외된 시간과 공간을 묵묵히 견디며 글을 쓰는 작가들의 문학적 성취를 응원합니다.
만드는 사람들
등짐꾼 : 김신숙(시인)
산지기 : 김진철(동화작가), 김혜연(시인), 오광석(시인), 이재(사진작가), 현택훈(시인), 홍임정(소설가)
디자인 및 편집 : 이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