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문학웹진 ‘산15-1’을 만들기까지
우리가 웹진을 시작한 것은 처음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시렸기 때문이다. ‘시린발’이라는 독립문예지를 만들자고 작당했다. 처음 ‘시린발’로 모인 사람은 김신숙, 김진철, 김혜연, 안민승, 오광석, 이재, 현택훈, 홍임정 등이다. 하지만 생업과 각자의 문학 활동으로 연대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공간으로 시옷서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7년 정도 흘러 우리는 문학 웹진 《산15-1》을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마음의 온도는 조금 올라갔을까. 문학의 꿈은 무지개 밑에 황금 항아리가 묻혀 있다는 이야기 같다. 그 항아리가 묻힌 곳에 가면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역에서 나고 자라 글 쓰는 작가들은 늘 무지개 너머만 동경해왔다.
우리는 지역 작가를 응원한다. 지역에서 책을 출판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끌어안는다. 그 행복을 찾아 무지개를 쫓으며 수평선을 건너거나 지평선을 향하여 나아가기도 한다. 지역 문학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듣거나 열변을 토한다. 행복도 불행도 경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수직이 아닌 수평선을 꿈꾼다. 제주도는 수평선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국내 일타 시야이기에. 경계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가 선택한 문학 웹진의 첫 지향점은 호라이즌이다. 수직이 아닌 수평선을 정신으로 삼는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 산15-1. 한라산 백록담 주소다. 이 주소를 문학웹진 이름으로 정했다. 백록의 정기가 서리기를 기대한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 행동은 제주 문학만을 위하는 길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글 쓰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공감한다. ‘산15-1’이란 이름은 경북 의성에 태어나 의성에서 사진 쓰고 시 찍는 이재가 생각했다.
제주도는 섬이지만 사실 산이다. 바다에 있는 산이라서 사람들은 섬이라 부른다. 산이기에 섬 아닌 것들도 다룰 수 있다. 문학 아닌 것들도 다 문학으로 여길 수 있다. 음악도 영화도 미술도 편의점도, 이곳은 문학으로 된 숲이지만 숲속에는 온갖 것들이 다 있다.
시옷서점을 운영하면서 꼭 문학이 아니어도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바느질, 팟캐스트 녹음 등 다양한 모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블록체인 방법으로 4‧3 희생자 명부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들은 수익이 발생하자 그 돈을 시옷서점에 후원했다. 그러면서 시옷서점이 기획한 『하얀 동백꽃 편지지』(인문놀이협동조합, 2020)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종잣돈이 생기자 우리는 회의를 다시 열었다. 제주 4‧3을 시집으로 엮은 시인들(김수열, 강덕환, 김경훈)을 길라잡이 삼고 ‘최후의 유격대’에 대한 책을 기획했으나 다양한 현실 상황에 직면하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면 마지막 유격대처럼 시작하고 싶었다.
종잣돈을 지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밑천은 그들이 4‧3 희생자를 기록하는 모임을 운영할 당시 회비로 모아둔 비트코인을 3년 동안 묵힌 후 생긴 이익금으로 만들었다. 이 군자금으로 창간호, 2호, 3호까지는 어영부영 발행할 수 있겠다. 앞으로 이 가상공간에서 우리는 좀 더 깊고 멀리 헤엄칠 것이다.
우리는 비트코인이 건네준 심장 소리처럼 공간이 생기면 무엇이든 싹이 튼다는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 시옷서점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웹진에서 새로운 싹이 나기를 기원한다. 비트는 심장박동이라고 하는데, 이제 이곳은 바람만 불어도 두근거릴 것이다. 요즘 지역소멸 위기라는 말을 한다.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우리는 언제까지 위기의 시대를 살아야 하나. 우리는 그래도 함께 이 한라산을 오를 것이다. 산에 오르면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겠지. 이제 여러분이 메아리를 들려줄 차례다.
- 문학웹진 ‘산15-1’ 등짐꾼 김신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