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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는

 

 

 

 

   당신, 지금 실수한 거야.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수습 가능한, 그것과는 다르지. 보통은 그렇게들 생각하지. 그저 운이 나빴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재수가 없었다는 그 정도의 결론이 최선이라는 것을. 세상에는 어쩌다가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실수란 없는 법이야. 무엇이든 애초에 발생하지 않게 막아낼 기회는 분명히 있지. 분명 코앞에서 대놓고 알려줘도 사람들은 외면하더군. 현실로 직접 맞닿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닌 줄 알거든. 이미 알아차렸을 땐 돌이킬 수 없어. 지금 당신처럼 말이야.

   내가 당신의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건, 우연은 아니야. 분명히 당신에게 선택지가 있었고, 거기에 응한 것이지. 혹여나 당황스럽다는 마음이 든다면 얼른 접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두 시간 전, 해가 점점 지려고 할 때쯤부터 산록도로를 걷고 있었어. 아주 천천히, 중간중간 아예 멈춰서 주변 풍경을 살펴보면서 말이지. 저 멀리서 차가 달려오면 손을 내밀었어. 대부분은 그냥 지나쳐버리더군. 어떤 차는 상향등을 깜빡거리나 경적까지 크게 울리기도 했지.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속도를 내서 사라진 차도 있었어. 그래도 난 계속 걸었고 차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손을 내밀었지.

   날이 점점 더 어두워질수록 확실히 느꼈어. 앞으로 걷고 또 걸어도 내가 발길을 허락하는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까만 아스팔트가 깔려버린 건, 사람이 아닌 나를 스쳐버린 저 차들만을 위한 것이었어. 도로와 잡초 사이의 경계선을 계속 밟는 게 최선이었지. 이대로 어디까지 걸어야 하나, 알 수 없었지. 분명 가긴 가야 하는데, 나를 기다려주는 곳은 없었지. 그렇다고 여태 왔던 길로 되돌릴 수 없는 노릇이잖아. 우리 삶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던가. 태어나는 순간 직진과 좌회전, 우회전만이 존재할 뿐 유턴이란 거 없어. 멈출지언정, 돌아간다고 생각할지언정 그것조차도 결국은 직진의 한 모습일 뿐이지. 그 역할에 평생 충실하게 살아왔던가, 질문하면 선뜻 대답이 가능할까, 그게 아니잖아. 눈앞에 가라고 하는 곳이 있으니, 나아갔을 뿐이고 그 끝은 각자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 나 역시도 마찬가지야. 세상이 눈에 들어왔을 때부터 당장 다가오는 것들부터 해치워야 했어. 그것이 무엇이어도 나를 위협하면, 누가 시키면 발로 움직이고 손이 해결해줬지. 그것에 대한 다른 마음은 없어. 누구라도 다 그렇게 살아오니까.

   당신은 일단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다른 게 맞아. 내 손짓을 무시하지 않고 일단 응했잖아? 목적지에 대한 질문을 답하지 않았는데도 기꺼이 이 차의 잠금장치를 해제했지. 푹 눌러쓴 검은색 모자, 눈 빼고 모두 가려버린 검은 마스크로 감싸버린 나를 보면서도 오히려 얼른 타라고 권했지. 목소리 자체도 너무나도 따뜻해서 코끝이 잠시 시큰거렸다니까. 그건 그러고, 나는 자리를 잡자마자 주머니 깊숙한 곳에 담아뒀던 가느다란 송곳을 꺼냈어. 다시 출발하려던 당신의 목에 끝을 갖다 댔지. 매끈한 뒷목에서 따끈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린 게,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이해해줬으면 해.

   난 당신의 실수를 기꺼이 인정해주려고 해.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어쩌면 확실한 우연이 아닐까 싶군. 자, 그럼 이제 다시 오른발로 브레이크에 발을 서서히 떼고 엑셀로 옮겨. 지금까지 해 왔던 그 자세 그대로 움직여주면 돼. 블루투스로 연결된 음악 말고 라디오를 틀어줬으면 좋겠어. 그렇지, 거기 말고 그래도 지역 방송을 들어야지. 아니아니, 그래그래, 거기거기, FM105.5 거기가 괜찮지. 조명은 자동을 되어 있는데, 그러지 말고 하향등으로 고정해. 안개등은 켜지 말고. 이대로 속도를 내도 앞차와는 거의 만날 수 없을 거야. 직전에 지나친 차는 30분 전쯤 지나가 버렸거든. 물론 다른 곳에서 합류한 차가 있을 수도 있겠지. 일단 이대로 가. 비상등은 누를 생각도 하지 말고.

   “어, 어, 어디로 갈까요?”

   참 빨리도 물어보는군. 목적지를 얘기할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말했을 거야. 지금은 이대로 쭉 가면 돼.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해. 룸미러는 아래로 내리도록 하지. 계속해서 나와 눈을 마주쳤는데, 내 얼굴을 굳이 봐 둘 필요는 없지. 세상에는 알아서 될 게 아니고, 아닌 것들도 많아. 지금이 그래, 내 얼굴을 기억해버린다면 선택지가 너무나도 협소해지거든. 나름대로 마음속에 고마움을 담고 있어. 지금으로서 최선의 배려는 이 정도라는 점, 잊지 말았으면 해. 그 사이 밤하늘이 깊어지는군. 여기서 당신과 밤하늘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 혹시 그거 아는가? 무수한 별들이 우리에게 비쳐질 때까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쳐왔다는 점. 우리는 별들의 수천 년 전 모습을 저기 밤하늘이란 이름으로 걸어두기만 할 뿐이지. 저들이 반짝이는 것에 아주 가끔은 감탄하지만, 어디가 끝인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아. 우리 역시 마찬가지야. 끝이 있다 해도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지. 이봐, 라디오 볼륨을 조금 더 올려보지.

오늘 오후 제주시 노형동 소재 호텔 1층 실외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소방당국으로 접수됐습니다.

이 사고로 10명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100여 명의 투숙객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초동 조사 결과 방화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고

정확한 화재 원인과 방화범에 대한 추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거 알아? 내가 당신을 본 건 지금 여기가 처음이 아니야. 방금 라디오에서 전해준 사건에서 100여 명의 투숙객 중 한 명이잖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어. 지금 룸미러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보니 확실해졌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그럴 거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지도 말라고. 더 확실하게 이야기해볼까? 뉴스에서 알려준 화재는 실외기에서 저절로 발생한 게 아니지. 누군가 그곳에 일부러 찾아갔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가방에서 삼다수 작은병을 꺼냈지. 생수치고는 색깔이 노란 거야. 거품도 제법 맺혀 있었고. 주변을 슬쩍 둘러본 그 사람은 생수병에 담긴 그걸 실외기 주변에 뿌렸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골고루 말이야. 그러고 다섯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나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는 거야. 그것도 연초로. 입에 담배를 한 대 물고 라이터까지 켰지.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시자마자 기침과 함께 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렸던데. 바닥에는 붉은 불길이 일어났고,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났던 것인데. 만약 그게 실수인 척 표현한 연기라면 박수를 보내고 싶고, 그게 아니라면 왜 하필 담뱃불인가 궁금하긴 해. 또 가만 생각해보니까, 어째서 호텔 외부에 설치된 실외기였을까. 그렇잖아, 거기서 불이 난다 쳐도 호텔 자체가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없거든. 몇 명이 병원에 실려간 건, 연기 때문인데 그마저도 생명에 위협을 줄 정도는 아니거든. 그 실외기를 통해 연기가 들어갈 곳은 어디인가 살펴봤더니, 다른 곳도 아닌 당신이 머물렀던 객실이었잖아. 혼자 머물렀던 것도 아니고 동행했던 여자랑 말이지. 당신이 처음 호텔에 들어섰던 것도 분명히 기억이 나지. 언뜻 보기엔 신혼부부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귤과 돌하르방이 곳곳에 붙은 밝은색 남방과 하얀 바지, 거기에 얼굴을 반쯤 덮을 만한 갈색 선글라스까지. 처음 호텔 로비에 들어설 때부터 눈길을 끌 만한 옷차림새이긴 했지. 같이 있던 여자도 큰 밀짚모자만 빼면 거의 옷차림새가 비슷했어. 다시 살펴보니까, 아직도 당신은 그 옷차림새 그대로군. 어때, 내 기억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지?

   “너, 뭐야?”

   이봐, 고개는 돌리려고 하지 마. 당신의 목에 드리워진 건, 아직 유효하다니까. 거기서 더 돌리려고 한다면, 이대로 힘을 줄 수 밖에 없지. 이 상황에서 나 역시 거기까지 원하지 않아. 속도도 내지 말고 앞만 보고 이대로 유지만 하면 돼. 그래, 이쯤되면 궁금할 거야. 어떻게 그걸 봤는지,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게 된 건지.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호텔에서 당신을 봤던 것도 일부러는 아니었어. 오히려 놀랐다고 할까. 투숙객 중에 그 실외기 쪽으로 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거든. 애초에 투숙객들이 다니는 동선도 아닐뿐더러, 흡연 자체만 생각해보면 다른 장소들은 많았거든. 거긴 내가 자주 혼자 있었던 곳이라고 볼 수 있지. 실외기 소음에 나를 묻어서 잠시 한숨 돌리고 담배 한 대 피웠다고 할까. 물론 삼다수 작은 병에 기름을 담아서 뿌리는 짓은 누구처럼 안 했지. 이 정도면 나에 대해 성의껏 알렸다고 봐. 물론 그곳에 오랜 기간 머물렀던 건 아니야. 어딜 가도 조금 일이 손에 잡힌다 싶으면, 다른 일들이 생기곤 했지. 남들이라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아니야.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다는 건,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그저 바람처럼 때로는 공기 중 하나처럼 어떤 곳에 자연스럽게 머무르고 싶었어. 왜 이렇게 사람들은 확인하려는 건지 정말 모르겠단 말이야. 알아서 좋을 게 있지만, 굳이 알아서 좋을 것도 없는 부분도 많거든.

   “원하는 게 뭐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당신은 내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군. 이 상황에서 당신에게 뭘 원하는 거 같아? 혹시라도 호텔에서 봤던 그 상황을 빌미로 뭐라도 받아내고 싶을 거 같았나 보지? 그랬다면, 산록도로 한복판에서 어떻게 당신인 줄 알고 차를 세웠겠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게 있지. 함께 있던 여자는 왜 놔두고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119 구급대원이 후송하는 모습까지 저 멀리서 봤는데, 거기에 당신은 없었거든. 혹시 내가 봤던 모습이 찜찜하다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애초에 거긴 CCTV도 없거니와, 경찰이 쫓고 있는 건 최소한 당신은 아니야. 오히려 나라면 조금 더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좋아, 얼마면 될까?”

   이것 참, 답답하네. 이봐, 지금 내가 언제 돈 달라고 했어. 당신을 보아하니 가방도 없고 주머니에 스마트폰도 없고 거의 맨몸으로 나온 모양인데. 화재 발생하고 여태까지 계속 운전만 했다는 거잖아. 나한테 줄 그건 있긴 하고? 돈이라는 종잇조각으로 사람을 너무 비참하게 만들지는 말자고. 어쩌면 당신과 난, 비슷한 처지일지도 몰라. 누군가의 시선에서 최대한 벗어나고 싶은 모양인데, 당신이야말로 어디까지 가려는 건가, 그게 궁금해지는데. 이쯤 되면 허심탄회하게 얘기나 해볼까. 시선은 앞만 보고, 두 손은 운전대 꽉 잡고, 입만 열면 되잖아. 여기서 침묵한다고 손해 볼 건 나보다 당신 아니겠어. 이리된 김에 사정이나 들어보자고. 혹시 알아, 딱하게 여기고 이 자리에서 물러날지. 나도 어떻게 보면, 연민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 지금 나만 좋자고, 이러는 거 같아? 일단 얘기나 해봐봐.

   “알 거 없어.”

   당신은 참, 여전하군. 혹시 자신에게 여전히 선택권이 있다고 착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겠군. 목이 따끔해졌지. 조금 전보다 힘이 더 들어갔어. 이대로 힘이 더 들어가면, 방금 나에게 내뱉은 말이 유언으로만 남을 거야. 삶의 마지막 한마디치고는 너무 허무한 거 아닐까. 좋아, 여전히 날 경계하고 있으니 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겠어. 그 호텔부터 얘기해보자면, 올해 들어 다섯 번째로 머무른 거처였어. 처음 입장할 때는 당신과 비슷한 차림새였지. 나에게 주어진 객실은 없으니 어쩌겠어.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섰지. 그곳에 직원 대기실이 있더군. 그곳에 누군가 놔둔 작업복을 갈아입었어. 곰팡내가 심하고 옷감이 눅눅했지만 뭐 어쩌겠어. 일단 입어봤지. 그 순간, 멀끔한 차림의 직원이 들어왔어. 나이는 약 50대 정도, 나를 보자마자 자신이 쥐고 있던 열쇠부터 던져주더군. 빨리 가서 청소하라고. 얼굴까지 벌게지면서 화를 내는데, 나도 모르게 허리를 바짝 숙이고 죄송하다고 했지. 도대체 뭘 죄송해야 하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 손에 들린 열쇠는 호텔 반대쪽에 있는 또 다른 사무실이었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없어. 봐도 잘 모르겠으니까. 책상과 여러 대의 화면, 그곳에는 호텔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지. 그 사무실 한구석에는 휴게실이라고 있었는데, 거기에 작은 침대뿐만 아니라 베개랑 이불까지 있었거든. 보자마자 눕고 싶었지만 일을 시켰으니 둘러보았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없었어. 화면에 담긴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밖에. 바닥에 먼지를 쓸고 걸레로 닦는 시늉까지가 최대치였지. 그 과정에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났지만, 그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어. 뒤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할 일 없으면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고 하더군. 그 과정에서 내가 누군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지. 그때부터 그곳에 잠시 거처를 둘 수 있었던 거야. 작업모를 푹 눌러쓰고 다니면 누구도 내 정체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지. 다만 각기 다른 사람들이 일거리를 준 건 맞아. 그 과정에 당신이 있었던 실외기 공간도 알게 됐고, 이곳을 떠나야 하나 고민될 때마다 한 번씩 찾아가곤 했었지. 어쩌면 오늘 당신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호텔의 부속품처럼 계속 머물러 있었을지 몰라.

   “너 뭐야?”

   이봐, 계속해서 질문이 맴도는 거 같군. 방금까지도 난 나에 대해 충실하게 이야기했어. 아무래도 운전에 집중하다 보니, 걸러서 듣는 모양이군. 여기서 중요한 건 말이야. 우린 구면이란 점이지. 최소한 내가 당신에게는 확실한 구면이야. 당신도 나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 하더라도, 의식 속 한구석에 내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지금 이곳에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잖아. 이쯤 되면 한 가지 알려는 줘야 될 거 같아. 도대체 왜 그랬던 거야?

   다시 입을 꾹 다물었군. 입이야 얼마든지 다물어도 좋아. 핸들을 그렇게 너무 꽉 잡으면 안 돼. 손바닥에 땀이 금방 차오르거든. 커브 구간인데도 속도를 점점 올리는 건, 순간적인 기회를 노린다고 이해해도 될까. 가만 보면, 당신은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내가 그렇게 쉬운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지. 일단 난 이 도로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직접 운전도 많이 해봤지. 지금 당신이 순간적으로 노렸던 그 기회는 오지 않을 거야. 당신은 벨트를 매고 있으니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고, 난 그 반대야. 송곳으로 당신의 목을 인질로 삼고 있지만, 그게 오히려 당신에게 또 하나 옥쇄 아니겠어?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내 손에 힘이라도 더 들어가면, 위험해지는 건 누구겠어. 눈에 뻔히 보이는 얕은 수는 오직 안 하느니만 못한 거지. 지금은 다른 거 생각할 게 아니라, 당장할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지.

   저기, 표지판이 보이는가. 조금만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올 거야. 이대로 직진해서 처음 만났던 그곳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바꿀 것인가. 이거 하나는 알아두면 좋겠군.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면, 범행이 발생하면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돌아간다던데. 이제 와서 그곳으로 돌아가겠다는 건 아니겠지. 이미 경찰이나 누구든 당신의 그 공간에서 조용히 사라진 것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을 거야. 그 뉴스에서 표현한 100여 명 중 일단 당신이 누락된 게 밝혀지면, 어떨 거 같아. 어떤 상황이든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닥쳐, 뭘 안다고!”

   오호라, 이제 우리 대화가 통하는 건가. 그런데 말이야. 도대체 생각은 있는 건가? 나도 막연하게 그곳을 빠져나왔지. 도망쳤다, 그런 것과 결이 다르다고 봐. 애초에 나란 존재는 누구에게도 인지된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더 이상은 있을 곳이 아니었어. 언젠가 이동해야겠다 싶었지만, 당신이 너무나도 앞당겨준 셈이지. 막상 걷기 시작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큰길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니, 무수천도 지나고 평화로에 접어들었지만 이대로 서귀포까지 갈 일은 아니었지. 쏟아지는 차량들을 지나쳐 산록도로에 들어섰는데, 한참 가다 보니 이제는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거야. 지나가는 차마다 손을 들었어. 누구도 세워주지 않더군. 그러다가 당신이 내 앞에 온 거야. 이 정도면 필연적인 게 아닐까. 오히려 당신이 나를 찾은 거란 생각 밖에 들지 않아. 안 그래?

   “글쎄.”

   좋아, 그러면 차를 세워. 마침 삼거리가 보이는군. 이대로 쭉 가면 노형, 우회전하면 한라산으로 향하지. 아무래도 우리가 서로 가고 싶은 방향이 다른 거 같은데, 이제와서 강요할 수는 없지. 원한다면, 여기서 조용히 내릴 의향이 있어. 15분 동안 나눴던 이야기는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는 거잖아. 일단 세워보자고. 마침 뒤에 차 한 대가 따라붙었는데 먼저 보내야지. 좋아, 여기서 당신이 결정하면 되겠어. 차는 세워두고 고개는 돌리지 않는군. 분명 처음에는 내 얼굴을 궁금해하지 않았던가? 난 뒷좌석 오른쪽에 가만히 앉아 있어. 여전히 핸들에서 양손을 떼지 않고 앞만 보고 있군.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은 너무나도 생각이 많아. 좋아, 그럼 내가 내리지.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없던 걸로 하자고. 서로의 존재를 목격했다는 자체가 누구에게도 좋을 일은 아니잖아. 다만, 나였다면 그대로 직진은 하지 않을 거야. 당신의 마음은 어떤지 확실히 알 수 없겠지만, 이미 행동했고 시간도 꽤 흘러버렸어. 사람들은 말이야, 과정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지. 눈앞에 나타난 현상만 알고 싶거든. 당신도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지. 하늘이 점점 더 까맣게 물들고 있어. 조금 전 봤던 별빛들도 먹구름에 조금씩 가리워졌어. 내가 다소 무례하게 탑승했지만, 우린 제법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할게. 그럼 조심히 가시게, 전조등은 확실히 켜고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괜히 더 수상하게 보일 거거든.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 미완으로 남겨진 것들은 기억 끄트머리에 남아 끝까지 발목을 잡아당기기 마련이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황급히 떠나버린 당신이 다시 상향등까지 켜면서 돌아올 것은, 너무나도 예측이 가능했어. 난 이제부터 당신에게 우연이 아니거든. 내게 다가올 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들이받으려는 것도 그리 놀랍지 않았어. 그 순간에도 내 모자와 마스크는 얼굴을 떠나지 않았지. 아무리 밝게 비춘다 해도 당신은 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

   “타.”

   열린 조수석 창문 너머로 당신은 여전히 앞만 바라보았지. 다시 자리를 잡은 건, 당신이 뒤가 아니라 옆이라니, 이건 좀 의외군. 안전벨트를 착용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다시 출발하자마자 방향을 잡은 건 직진이 아니라 바로 우회전. 1100도로를 진입하자는 건데, 우리 눈앞에는 점점 어둠이 짙어졌고, 귓구멍이 멍멍한 느낌이 들기도 해. 당신도 미간을 찌푸리는 걸 보아하니, 나와 상태가 비슷하겠군. 그런데 타라고 해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봐, 원래 목적지가 이쪽은 아니었잖아.

 

오늘 오후 노형동 소재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는 계획적인 방화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투숙객을 묭의자로 지목했고, 공범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확보된 CCTV를 토대로 용의자의 신원을 특정하고 있으며,

공항과 항만, 도심권을 중심으로 검문에 들어섰습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 아무래도 당신으로 특정 되었나보군. 내가 말하지 않았던 가. 사건이 벌어지면 의도적으로 멀어진 존재부터 의심받기 마련이라고. 가까이에 있었다면 저들의 주목을 받지 않았을 거야. 지금도 마찬가지지, 나를 내려주고 그대로 갔더라면 오히려 기회는 있지 않았을까? 차를 돌릴 시간을 아직 충분하다고 보여지는데, 어떤가?

   “어디까지 본 거지?”

   무엇이든 적절한 때가 있지. 요즘은 그걸 함축적으로 타이밍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시기를 놓친 말과 행동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기도 하지. 지금 당신의 질문이 딱 그래. 내가 얘기를 풀어놓을 때, 물어봤어도 될 부분 아니었던가. 이미 답을 충분히 들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좋아, 질문이 왔으니 성실한 답변을 해주는 게 내 몫이지. 당신은 자신이 예약했던 객실 실외기에 갔고, 그곳은 공교롭게도 내가 혼자 종종 찾아가는 곳이었지. 투숙객의 동선과 거리가 멀어서 굳이 거길 찾아갈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거기서 기름을 쏟아내고 담배를 피워서 실수인 척 꽁초까지 떨어진 것. 그게 내 눈앞에서 펼친 당신의 행동이 아니었던가. 다만 자리를 벗어날 때 주변을 조금 더 살피지 않았던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네. 바로 열 걸음도 되지 않은 곳에 내가 서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던 눈치니까. 그곳은 CCTV가 직접적으로 닿지 않으니, 누구도 당신이 그곳에 갔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거야. 당신이 직접 놓친 척 던져버린 꽁초마저도 불길에 삼켜졌을 테니. 불길이 일어나고, 그걸 직접 확인한 당신은 입가에 미소를 숨기지 않았어.

   “그 말을 믿을 거 같나?”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은 귓속에 담아두고, 듣기 싫은 말은 귓가를 맴돌게 하다가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내보려고 하지. 얼마든지 그러라고. 믿지 않을 얘기를 굳이 왜 사서 물어보는 건가. 물론 내가 없는 사실을 그럴싸하게 지어낼 수는 있지. 그렇다기엔 당신의 얼굴은 너무 허옇게 변하지 않았던가. 목 주변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어디서 나온 건지 오히려 궁금해지는군. 이제는 내가 궁금한 걸 해소해줄 차례야.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게 우리 인간 세상의 규칙이니.

   “말해봐.”

   좋아, 이제야 우린 대화가 진정으로 통하는 거 같군.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같은 배를 탔고 눈앞에 펼쳐진 어둠을 뚫고 나아가야 할 처지는 똑같으니 말이야.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른 건가. 동행한 그 여자의 정체가 뭔지부터 궁금해지는데.

   “나도 몰라.”

   이것 참,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군. 내가 도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다른 사람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 비슷한 옷을 입고 함께 객실까지 들어갔던 그 사람을 물어보는 거야.

   “모른다니까.”

   단언할 수 있는 건, 확신이 있기 때문이지. 그래, 좋아. 이제 그 자세한 내막을 직접 듣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테니. 그래,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면 좋겠는가. 돌아와서 다시 나를 태웠을 때, 뭐든 생각은 있었을 거 아냐? 한편으로는 세상 모든 일들이 머릿속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날것 그대로 행동이 되기도 하지. 일단 저질러 보고, 그다음 본능에 맡겨서 움직임으로 대응할 수도 있어. 가만 생각해보니까 나도 그랬네. 살아왔던 모든 순간이 알면서 했던 것들은 없어. 닥치는대로 쳐내거나 끌어안았을 뿐. 누구에게 물어볼 새도, 누구의 질문을 받아서 답할 겨를조차 없다고 봐도 될까. 다만 세상 누구라도 나를 알아보면 안 된다고 여겼어. 누군가는 어떻게든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 갖은 노력을 하겠지만, 난 그 반대야. 알려지면 안 되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게 답답해. 우리가 숨 쉬는 것처럼,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그게 내 삶의 당연한 모습인걸.

   알록달록 꽃으로 도배가 된 풍경화 속 티 나지 않은 점처럼 살아왔지. 누구도 내 존재에 대해 증명해주지 않았어. 아주 잠깐은 그것이 너무나도 간절했는데, 그조차도 내게 허락되지 않은 것임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난 그런 존재야. 드러나서도 안 되고, 사라져서도 안 될, 스스로 포기할 수 없는 굴레에 빠진. 어쩌면 내 생애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하고 있어. 이 얘기를 온전히 기억해서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간다면, 누군가에게 전달해줄 수 있을까. 글쎄, 아무도 믿지 않겠지. 어쩌면 난 당신에게 환영과도 같은 존재일지도 몰라. 지금은 유일한 목격자이자 어딘가의 증언자가 될 수도 있으니, 곁에서 멀어지면 불안감을 증폭시킬 존재일지도 모르지. 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가 보군. 지금 우린 고지를 넘었어. 1100, 여기를 넘어서면 시의 경계도 넘게 되지. 그렇다고 지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가 극적으로 바뀌진 않아. 지금 계속 나아가고 있고, 대신 이 차의 연료가 점점 떨어지는 것만큼은 명확하군. 핸들을 언제까지 꽉 잡고만 있을 건가. 굴곡을 따라서 차가 휘청거리는 것처럼 당신도 마찬가지군. 무엇이든 결정은 빨리하는 게 좋을 거야. 그게 언제냐고 묻고 싶다면, 바로 지금 말이지. 속도를 내고 싶다면 지금이야. 오른발을 꽉 밟아. 세게 더 세게, 우리 앞을 가로막는 차는 없고, 뒤따르는 차도 없지. 당신의 손끝, 발끝 하나로 질주로 변해버리는 이 순간을 마무리할 수 있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을 그게 아니라니까. 고개를 돌리고 싶다면, 돌려도 좋아. 당신을 제어할 존재는 이미 사라졌으니까.

   “그만, 그만!”

   왜, 멈춘 거지? 지금 여기서 발만 떼면 도로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 이건 추락이 아니야. 비상이 될 수 있지. 한라산이 두 팔 벌려 우릴 꼭 안아줄 수도 있잖아. 무얼 망설이는 건가. 이대로 돌아갈 의지도 없고, 해낼 수 있는 일들도 없잖아. 내가 조금만 몸을 앞으로 쏟아내면 이대로 내려갈 것 같은데, 어때. 조금 더 거들어 주면 될까? 함께 고지도 경계도 넘어섰으니, 지금의 중심도 함께 넘어갈 준비가 됐어.

   “돌아가자.”

   잠깐, 어째서 기어를 R로 바꾼 거지. 차를 뒤로 물린다고, 지금 상황이 없던 일이 되지 않아. 어차피 해야 할 일을 미뤄버리면 고통은 오히려 더 가중될 뿐이지. 숨을 꽤 오래 참았나보군. 길게 내뱉는 당신의 호흡이 떨려. 그래, 좋아. 일단 다시 방향을 잡고 원래 가던 길을 내려가보자고. 여전히 경사는 가파르고 곡선도 꽤나 심하지. 이대로 갈 수 있겠어? 아니면 원래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이미 직진하고 있군. 이제 마음을 다잡은 거 같으니. 다시 물어보겠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거야. 허울뿐인 육신을 이생에 붙잡아둔다고 될 일은 아니잖아. 가슴에 담아둔 게 너무 많으면 나중에 영혼이 무거워서 하늘로 올라갈 수 없지. 보면볼수록 담아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놓아야 할 땐 과감하게 놓는 것도 숨통이 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지. 나는 말이야, 어떤 것도 붙잡은 적이 없었어. 잠시 머무는 거처도 스치는 것이고, 주머니에 가끔 담긴 돈도 마찬가지야. 그러다가 잠시나마 붙잡고 싶은 사람과 만나기도 했지. 어떻게든 나를 숨겨야만 했는데, 그 사람 앞에서는 드러내고 싶었어. 한동안 그 주변을 맴돌았던 적이 있었지. 거기도 내 존재를 느꼈던 모양이야. 먼 발치에서 바라봤던 자리에 그가 먼저 서 있었거든. 내게 물었지, 이름이 무엇이냐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맑은 눈망울 속에 내가 보이거든. 지금처럼 모자와 마스크, 긴옷으로 둘둘 말려있는. 답할 수가 없었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거든. 그 자리에서 뒤돌아섰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어. 다시 만나자고. 그 자리에서 다시 돌아서고 싶었지. 딱 그뿐이었어. 돌아서면, 다시 내 이름부터 말해줄 수 있을까. 결국 그를 뒤로하고 앞만 보고 나아갔지. 다시 그곳으로 찾아갈 수 없었어. 갔다가 다시 그 사람을 만나면, 또 다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을 거야.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비겁하군.”

   웃네. 당신은 이런 것에 웃음이 나오는가 보군. 그런데 나랑 다를 게 뭐 있어. 오히려 당신이 더하면 더하지 않았을까. 지금쯤 되니까, 조금 후회가 돼. 어째서 손을 흔들어 이 차를 세웠을까. 괜히 뒷자리에서 송곳까지 들이밀고 함께 움직이자 했을까. 이제는 당신이 내게 송곳이든 칼이든 뭐든 들이밀어야 할 게 아닌가. 어차피 이리된 거 저기로 가자고. 당신은 이미 보고 있을 거 아냐. 저기 우리에게 드리운 어둠을 물리치고 별빛을 가득 담아낸 저곳 말이야.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빛들이 저기에 모여 있는 거 같군. 당신도 나랑 같은 생각 아니던가. 그런데 차를 왜 세운 거야? 저런, 결국 연료 게이지가 바닥을 쳤구만. 당신이 가던 길을 멈추고 후진만 하지 않았더라면, 여기 멈추진 않았을 텐데. 이제 어떡할 셈인가. 밤이 너무 깊었어. 이곳을 지나치는 다른 차들은 없어. 마냥 차에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난 먼저 내리겠어. 시동까지 멈춰버린 차를 기어만 중립으로 바꾸려고? 제어할 수 없는 건, 우리로 충분하지 않은가. 여기까지 이끌어줬던 수단은 이제 놓아버리자고. 무엇이든 놓아야 할 땐 확실히 놓아야 한다고.

   저기, 바다를 봐봐. 차에서 내려서 보니까 그 향기까지 가까워진 거 같은데. 이대로 걸어서 내려간다고, 저 바다가 가까워질 수 있을까. 지금 딱 이 거리에서 내려다보는 게 좋겠어. 저기 불빛들 보이지. 흔들리는 파도에 제 몸을 맡긴 불빛들 말이야. 나도 잠시 저곳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지. 바다에 모든 걸 맡기고 거기서 내어주는 것들을 힘껏 낚아 올렸던. 그때 물고기 한 마리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지. 여느 물고기와는 달랐어. 목재 바닥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바닷물을 모두 털어내면서까지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어. 마지막 호흡을 내뱉으면서도 힘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그 눈빛, 아직도 잊을 수 없지. 마치 당신이 저 바다를 내려다본 것처럼 말이야. 이제, 진짜 내 이름을 알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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