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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을 밝히는 문학

시집 <불투명인간> 피재현, 걷는 사람

전쟁이 나자 죽어도 죽이고야 말겠다는 사람들이

기어이 우리를 죽였어요

대구 형무소 일천사백이 명, 대구 형무소에서

부산형무소로 떠난 일천일백칠십이 명

기어이 죽었어요 결국 죽었어요

 

깨끗하게 머리를 깎고 흰옷을 입고

나는 이제 집에 가는가 보다

코발트 블루

환장하게 푸른 바다를 건너 집에 가나보다

 

~중략~

 

그럴 줄 알았으면 산에서 그냥 죽을 걸 그랬어요

아버지가 죽고 아재가 죽고 아무개가 죽고

개돼지처럼 사람이 죽고 사람처럼 개돼지가 죽고

기어이 죽일 거였으면 결국은 죽을 거였으면

그 푸른 바다는 건너지 말 걸 그랬어요

그 높푸른 하늘을 우러르지 말 걸 그랬어요

 

코발트 레드

빛나는 피바다를 건너 나는 이제 집에 갈래요

어멍 아방 묻혀 있는 섬으로 갈래요

 

「코발트 레드」 부분

 

  경산 코발드광산을 본 적이 있었다. 대구 10월문학제 때 인가 코발드광산을 개방하여 글 쓸 거리가 뭔가 나올까 싶어 기대감에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그 어두운 갱도를 내려다본 순간 울컥하고 감정이 차올라 눈물이 떨어질 뻔 했었다. 기대감 같은 거 조차 가지고 가면 안 되는 거였다. 그곳은. 바닥도 보이지 않는 저 깊은 무저갱에 떨어진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같은 사람들이었다. 시는 서정적 풍경을 노래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픈 역사를 노래하거나 잊지말아야 할 사람들에 대하여 노래할 때 더 감동적이다.

  제주4.3은, 한국전쟁은, 대구코발트광산은 잊어버리거나 묻어버려서는 안되는 아픈 이야기이다. 그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지도록 형상화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어쩌면 우리 문학인들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나고 자란 안동에 내려와

병원을 차린 의사가 있었다

 

여기저기 돈도 빌리고

리스로 의료 기기를 들여

개원을 했으나

병원은 잘 되지 않았고 빚만

늘어 갔다

 

코로나19 감염병이 번지면서

병원은 환자가 넘쳐났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젊은 의사는 자신을 돌볼 새도 없이

일을 해서 빚을 갚았다

 

그러다가 그만

병원에서 쓰러져 죽었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의 죽음만 슬픈 일인 줄 았았더니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슬픈 일」 전문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파고드는 작가들은 그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바라고 심연을 형상화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표적인 부르조아로 형상화되는 의사와 빚과 죽음. 어딘가 모순이 될 것 같은 언어들에 이 시가 더욱 와 닿는다. 빚더미를 짊어진 의사의 과로사는 결국 주목받지 못한다. 시인은 그 죽음을 슬퍼하며 그에 대하여 사회 내부의 죽음으로 형상화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단 한번 주어지지만 누구에게도 공평하지 않게 다가온다. 누구나 죽음을 외면하고 싶은 것은 사람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의 이미지를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결코 이 사회의 심연을 보지 못하고 그 속으로 빛을 뿌리지 못할 것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죽음의 가치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죽음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공간, 그 심연 속에 어떻게든 빛을 뿌리고 싶은 것이다. 심연에 빛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서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몰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2026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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