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난기류를 지나는 방법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은 난기류를 여러 번 겪는다. 난기류는 유체의 흐름이 상하좌우로 섞이면서 흐르는 현상이다. 비행기가 난기류 속에 들어가면 비행기는 롤러코스터가 된다. 난기류는 맑은 날에도 일어나기에 한번 그 속에 빠지면 속수무책이다.

  적도 부근이 난기류가 가장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비행 중 거의 절반을 난기류에 시달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호주나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는 대체로 흔들리면서 날아가기에 멀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내 생애 적도를 넘는 일은 없을 거라 다짐했다.

  강풍이 불 때는 결항을 하지만, 난기류는 알 수 없어서 복불복이다. 그런데 이 난기류로 인한 비행기 추락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좌석이나 선반에 부딪쳐 부상을 입는 경우는 있어도 난기류로 인한 여객기의 대형사고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작년에 사천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탄 적 있다. 난기류를 만났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특히 비행기가 급히 하강할 때는 아찔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사망자 명단에 있을 내 이름을 떠올렸다. 난기류로 인한 여객기의 대형사고가 거의 없다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YTN 뉴스 화면에 뜰 사망자 명단을 상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주공항에 여러 번 착륙을 시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회항을 처음 겪었다. 비행기는 다시 돌아왔다. 나는 서둘러 김해로 가는 버스로 탔다. 김해공항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돌아왔다.

  조선시대에 제주 목사로 임명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일은 위험한 일이어서 제주 목사 자리는 한직이었다. 조선 영조 때 장한철은 과거 시험을 보러 가다가 표류를 해 본의 아니게 해외여행을 했다. 그의 <표해록>에는 이국의 낯선 풍경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섬의 감각으로 다가가는 부분이 있다. 내가 겪은 일로 이해하는 것. 이해하면 불안하지 않다.

 

  탐라의 한라산 서남쪽에 석봉이 있는데 몹시 높아서 그 봉우리를 오르는 사람은 등나무를 휘어잡고 나뭇가지를 붙들며 원숭이처럼 몇백 걸음 올라가야 하는데 거기에 석굴이 있다. 아늑하게 틔어 있는데 주위는 석벽으로 삥 둘려 있어 그 자체가 스스로 하나의 석실을 이룬다. 이것을 이름 붙여 산방이라 한다. 그 가운데는 돌부처가 하나 있는데,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를 만치 창연한 고색을 띠고 있다. 또한 목기가 있는데 그 모양과 길이는 마치 술통과 같다. 그 속에 물이 가득 차 있다. 굴 위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면 물이 있어, 틈틈이 새어 나오는 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통속에 담긴다. 쉬지 않고 방울져 떨어지나 물은 넘쳐나는 일이 없다.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서 두 손으로 움켜쥐고 마시고 또 마셔도 그렇다고 물이 축나는 법도 없으니 어찌 이상하지 않으리오.

-장한철, 『표해록』(범우사, 1993) 부분

 

  안남국의 상선에 의해 구조된 장한철 일행은 그 배에서 며칠을 보낸다. 향수에 젖은 꿈을 꾸면서 해몽을 통해 고향에 돌아갈 날을 가늠한다. 그리고 4층 크기 배의 내부구조를 보며 감탄한다. 백물과 기명이 고루 질서 있게 정돈되어 있고, 닭을 비롯한 가축도 타고 있다. 배의 밑바닥에는 두 개의 작은 배가 들어 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마실 수 있는 물을 계속 공급해주는 장치였다. 그 기술은 기밀이라 더 알아낼 수 없었는데, 장한철은 고향 산방산에 있는 마르지 않는 샘물을 통해 그 비밀을 추측한다.

  바다에서 난기류를 만난 장한철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감각한다. 회항 끝에 몇 시간 더 걸려 귀가한 나는 가족들에게 무용담처럼 회항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것이 글로 쓰면 기록이겠지. 장한철은 기록했기에 우리가 그의 표류기를 이해할 수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도 예기치 않은 일을 겪기 마련이다. 얼마나 많은 난기류가 우리를 흔들어놓았던가. 살기 위해서 써야 한다.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생존일지를 쓴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와도 백포로 된 돛을 높이 펼치면 된다. 난기류를 통과하면 승무원은 서둘러 기내식을 준비할 것이다. 우아하게 콜라 한 잔 마셔야지.

2026 봄

한라산

문학웹진 <산15-1>은 제주 한라산의 주소에서 이름을 딴 제주 기반의 계간 문학 웹진입니다. 섬과 산이 가지는 상징을 문학의 바다에서 풀어보고자 2017년 제주문학동인 ‘시린발’에서 출발하여, 시옷서점과 제주도 내 개발자 모임의 도움으로 산15-1에 도달하였고, 이후 제주비행접시와의 협업으로 문화예술적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발행하며, 내부 필진과 외부 필진의 작품을 골고루 수록하고, 때로는 의미 있는 작품을 재조명하기도 합니다. ‘산15-1’은 소외된 시간과 공간을 묵묵히 견디며 글을 쓰는 작가들의 문학적 성취를 응원합니다.

만드는 사람들

등짐꾼 : 김신숙(시인)

​산지기 : 오광석(시인), 이재(사진작가), 현택훈(시인), 홍임정(소설가)

​디자인 및 편집 : 이재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