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태국여행기 16~18
2017년 10월 14일-태국여행기 16
고독의 맛 2
발코니 밖으로 메콩강 너머 점점이 불을 밝히고 있는 라오스의 밤들을 친구삼아 바라보다가 잠이 든지 얼마나 지났을까. 사방에서 들려오는 콩 굴러가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나무를 엮어 벽지를 삼은 얇은 나무벽은 소리에 관한 한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빗소리를 눈을 감고 들으며 나는 치앙마이의 안락함에서 떠나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에서 이번에는 돌멩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장 역시 얇은 나무판이었고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한무리의 영어권 여행객들이 윗층 방에 들이닥친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방 안에서 뛰어다니는 것은 아닐 텐데 눈을 감은 내게는 그들이 마치 “오 마이 갓”을 외치며 한꺼번에 덤블링 타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숙소 마당에서 기르고 있던 닭들과 이웃집의 닭들이 일제히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답하듯 멀리 라오스의 닭들도 울기 시작했다(강 너머까지 들렸다). 태국의 닭들은 무슨 사연인지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밤새 심하게 울었다.
내 방은 이 건물의 정 중앙에 있었고 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붕을 구르는 빗소리와 방과 복도를 구르는 발소리와 목이 비틀린 것처럼 울어대는 닭소리와 국경 너머의 희미한 소리까지 그 모든 소리들이 치앙콩 방갈로 3호실을 들어올리기 시작해, 나의 방이 우주의 중심으로 둥실둥실 떠가는 것이었다(완전히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의 방은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와 소리가 잦아들 때쯤에야 다시 태국의 최북단 국경도시 강변의 방갈로 2층 가운데 빈 공간으로 내려앉았다. 한마디로 치앙콩에서의 첫날밤은 결코 고독의 맛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린 후 나는 남편에게 “최고의 밤을 보냈다”는 문자를 보냈다.
내가 묵고 있는 방갈로에 대해 사족을 이야기하자면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지만 세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 정체모를 패브릭을 유난히 두려워하는 내게 위생상태가 의심스러운 털담요(이번에도 털담요)는 소화하기 힘든 물건이라 수건을 덮고 자고 있으며, 둘째 돈을 아끼기 위해 외식보단 수퍼에서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내게 냉장고 문틈에 낀 검은 곰팡이는 여간해서 적응이 되지 않는다. 셋째 사무실 보온병에 든 뜨거운 물(이번에도 보온병)을 매일 한 잔씩 얻는 게 번거로워 커피믹스를 찬물에 오랫동안 개어서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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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콩에서 우주의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2017년 10월 15일-태국여행기 17
방갈로 3호실 소리증폭장치 1
“이번에는 시골의 망령에 이끌려 시골길을 끊임 없이 헤맬지도” 라고 치앙콩에 온 다음 날 남편은 내게 문자를 보내왔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오전에 산책을 나서서 마을 끝에 발도장 한 번 찍고 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숙소를 중심으로 하루는 마을의 왼편 끝, 하루는 오른편 끝, 어느 쪽이라도 숙소에 다시 돌아오면 그래도 아직 정오가 되기 전이다. 왼편으론 맛 좋은 커피집이 하나 있고 오른편으론 제법 큰 테스코 슈퍼가 있어서 하루는 질 좋은 카페인을 즐기고(찬물에 개어마시는 믹스커피의 아쉬움을 달래줄) 하루는 이틀치의 장을 보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숙소에서 보내고 있다. 치앙마이의 골목골목을 뒤지고 다닐때는 생각의 오지랖이 건축양식에까지 이르더니, 행동반경이 줄어드니 생각도 그저 뒷방에 앉아있는 노인처럼 방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귀를 펄렁펄렁 세워보는 게 다다.
앞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묵고 있는 방은 숙소 건물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고, 나의 숙소는 또한 강변에 일렬로 세워져 있는 3개의 숙소 건물 중 가운뎃 건물이니 나의 방갈로 3호실은 세 곳을 통 털어도 한 가운데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투과해 들어오는 듯한 얇은 대나무 판자벽. 이곳에서 나는 하루종일 소리들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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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콩에서 묵었던 숙소 입구
2017년 10월 16일-태국여행기 18
방갈로 3호실 소리증폭장치 2
결혼식 하루 전날 밤에 낯선 시댁집에서도 쿨쿨 잘 자던 나이건만 여행을 온 이후로 하루 세 시간 이상은 잠이 오지 않는다. 갈 데 없는 이곳 치앙콩에 마찬가지다. 하릴없이 남는 시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 자리에 누워도 흘러가는 메콩강만 바라보다가 다시 흐느적거리며 일어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시간도 어느 사이 밤으로 고정되어 내게 하루의 시작은 정말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 0시. 이때부터 하루의 소리도 시작된다. 하루간의 녹음테이프를 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새벽 2시 경부터 예의 그 태국의 기 센 닭들이 일제히 울어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닭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면(지쳐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제는 사람들이 깨어나 바닥에 발을 쿵쿵 구르며 하루를 시작하고, 나는 그 약간 잠이 덜 깬 듯한 인적을 얇은 천장을 통해 듣게 된다. 그리고 곧 옆 숙소의 한무리의 영어권 관광객들이 발코니 식당으로 나와 블랙퍼스트를 먹는 접시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아침의 소회를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비슷한 시간에 내가 묵는 숙소의 로비에서는 의자를 옮겨가며 빗자루질 하는 소리가 천장을 통해 들려온다(언덕에 기대어 지은 방갈로라 로비가 3층 반대편 길가로 나 있다). 그때쯤엔 하루해가 완전히 떠올라 있고 나도 나의 방문에 자물쇠 잠그는 작은 소리 하나 내며 숙소를 나선다. 아침을 먹을 겸 산책을 다녀오면 정오 무렵, 이때부터의 소리들은 매번 다르다. 주로 주인 아주머니가 윗층 로비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어린 종업원이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잔신부름을 하고, 나이가 지긋하고 덩치가 큰 종업원의 노동하는 발자국 소리가 쿵쿵 들린다. 그리고 사이사이 닭들이 나무 위로 날아 올랐다가 다시 지상으로 뛰어내리는 소리, 천장 속에 살고 있는 새 소리(그럴리가 없겠지만 꼭 내 방 천장 틈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이웃집 아낙이 들렸다 가는 소리 등이 다양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오후 4시쯤 되면 어김없이 절구 찧는 소리가 윗층 부엌에서 들려오기 시작해 한동안 이어진다(이 소리는 태국의 김치와도 같은 음식인 쏨땀을 만드는 소리로, 쏨땀은 그린파파야를 채썰어 마늘과 고추와 함께 절구에 넣고 빻은 후 마른 새우와 땅콩과 생선액젓을 넣고 버무려 만드는데 나는 태국에서 먹어본 음식 중에 이것이 가장 맛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