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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한 시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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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도의 오후 한 시, 비가 내린다. 캄보자 향기 흩어지고, 길게 늘어진 야자 잎 사이로 원숭이들 새끼를 안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비는 오후 한 시를 잊지 않는다.

 

  PEO1730 열세 살은 물 위에서 돌아갈 길을 잃었다. 공장에 가서 두 해만 일하면 돌아올 수 있다는 약속은 봄날 부산항을 떠나 시모노세키, 대만, 광둥, 사이공, 바타비아를 지날때마다 한 겹씩 가라앉았다. 적도는 보이지 않았지만 오후 한 시의 비는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았다. 숲의 어둠보다 먼저 다가오는 군화발 소리,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던 열세 살의 밤들. 그러나 얼굴에 난 칼자국도 죽음을 삼킨 약도, 통증을 재우던 아편도 끝내 고향의 봄을 지우지 못했다. 싱가포르 수용소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집은 이미 흉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귀향은 끝내 오지 않았다.

 

  지금도 암바라와에는 오후 한 시가 되면 비가 내린다. 열세 살이 있던 자리에 화장실이 들어섰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는 끝내 그 문을 열지 못했다. 캄보자는 피고, 원숭이들은 젖은 나무를 뛰어다니고, 숲은 오래전과 같은 얼굴로 숨을 쉰다. 잊은 것은 암바라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오후 한 시를 건너지 못한 열세 살 PEO1730 오랑 꼬레아, 아직도 적도의 비를 맞고 있다.

 

*정서운(1924~2004)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열세살에 취업 사기에 속아 인도네시아 암바라와로 강제 동원되었다.귀국 후 피해 사실을 숨기지 않고 증언과 인권 운동에 헌신했다.전쟁과여성인권 아카이브에 따르면 관리번호 PEO173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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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회진  sprain74@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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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 ㅣ 공중 필사

2026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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