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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의 악보(The Pacific Score, 1948)
혹등고래의 노래는 태평양 건너
수년에 걸쳐 유행한다지
그해, 지상의 언어로 끝내 번역되지 못한 문장들, 섬의 붉은 흙 비명도 없이 삼켜버린 숨들, 바다의 거인들 후두 깊은 곳 떨어 기어이 초저주파의 궤적으로 받아 적은 것들, 칠 분에서 삼십 분 사이, 정교하게 반복되는 골격의 마디처럼, 지상에 유서 한 장 남기지 못한 무명(無名)의 기록, 오직 차가운 물의 압력 속에서만 결정을 이룬다, 파도만이 자유로운 섬과 섬 사이, 증언을 얻지 못한 울음, 도입부도 없이 태평양 심장부로 번져갈 때, 도달할 주소 없이도 스스로 부력을 얻는다는 영도의 가능성. 같은 뼈의 밀도, 같은 수압의 심도, 같은 계절의 낙화를 견뎌낸 종(種)이라면, 서로의 청력을 통과하지 않고도 같은 단조를 앓고 있었을지도, 이것을 전승이라 부르기엔, 누락된 통로, 아득한 기억의 반경.
그러므로 이름 붙일 수 없는 음향학,
좌표도 기보(記譜)도 없이
오직 심해에서만 완성되는 악보
김연 poet78@naver.com
이호석 ㅣ 공중 필사
2026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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