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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심 ㅣ 하효, 살레

 하효, 살레

 

 

  살레라는 말

  당신과 살래 같아서 좋은 말

  열쇠는 국그릇 엎어놓은 곳에 있어요

 

  부엌 속의 살레

  당신의 선물

 

  난 살림을 해본 적이 없는 여자라서

  엄마가 만들던 삼색 계란말이

  꽈리고추멸치볶음은 타지 않고 달지 않게

  아…그…부드러운 소고기미역국은 어떻게 끓이지

 

  당신의 생일상을 차리고 싶은데

  샌드위치와 바나나우유

  당근을 뺀 김밥

  밥 냄새가 싫어 그냥 콘푸레이크에 우유

  엄마의 잔소리와 한숨 섞인 아침이

  나의 한숨과 후회로 올 줄 알고 이랬나봐요

 

  당신이 살레

  당신이랑 살래

 

  살레 속에 들어가 소고기미역국을 끓이고 옥돔구이를 하고 고봉밥을 은수저로 떠서 당신 입에 넣어주고 자리젓과 콩잎을 찾는 당신의 짧은 입매를 타박하고 귤이나 까먹는 나의 볼을 살짝 꼬집는 당신에게 눈을 흘기고

 

  그리로 가서 살래

  당신이랑 다시 살래

 

  살레 속에 잘 마른 그릇

  일산 커피잔

  숨겨둔 양과자

  잘 개켜진 하얀 행주

  할머니가 짜준 참기름

  몰래 준 네 잎 클로버

  살레 속에 쌈지돈과 보석함

 

  살레가 부엌 한쪽 벽에서 책장처럼

  입을 다물고

  비밀의 열쇠를 물고

  이불의 속을 품고

  보물을 묻고

  열려라 참깨

  우리의 목소리로만 열리는

  살레는 어머니에게서 내게로

  내게서 당신에게로

 

  열쇠는 국그릇 엎어놓은 곳에 있어요

   김병심  1995na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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