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불란지, 노래를
노래를 부른다기에 우리는 여름밤 숲으로 갔다
하룻밤 머물렀을 자리에 앉아 마지막 유격대를 생각한다
최후는 여름밤이 아니고 겨울밤이었을까
불란지, 불란지들이 가물거리는 여름 숲에서
유격대는 유격대로 시작해 최후의 유격대가 되었다
낭만이 가득한 총이 발사되었다
애초에 아무도 죽이지 못할 빈 탄환들
산 에염에서 풀벌레 소리로 빛난다
찬물에 더듬이 헹구며 발바닥을 잃고서도
기어이 흐르는 투명한 노래들
밤이 깊어 별이 하나 머리 위에 빛나거든*
전사의 맹세를 중얼거린다
눈물 대신 내 무덤가에 총 한 자루 놓아주라는*
뜻을 생각한다
기쁘게 싸워 쓰러진 넋이라도 일어나 싸우리니*
목소리를 상상한다
불란지 빛나던 여름밤, 숲에서 사라진 눈동자들
그 사람이 아버지라면
서툴게 쓰기 시작한 아이의 글씨체,
그 사람이 열여섯 살 장남이라면
새벽까지 재에 묻어 지킨 어머니의 불씨
대낮을 닮은 총명한 사람들
끝날 줄 알면서도 산으로 올랐다는데
산 사람들 머물렀을 자리에 수풀처럼 고여서
찬 발바닥 닮은 찬물 소리 듣는다
입으로 삼키는 식량처럼
발각되지 않을 혓바닥으로 노래하던 불빛들
노래를 부른다기에, 우리는 숲으로 갔다
우리가 늘 마지막 유격대 아닌가
뭉클한 심장을 지혈하듯
최후의 여름숲은 겁도 없이 무럭무럭 자란다
* 윤민석의 노래 ‘전사의 맹세’ 중에서.
김신숙 dodohandal@naver.com
김신숙 ㅣ 입력 중
bottom of page